브롬톤 부산여행 1편: 동대구역에서 청사포까지, 설렘의 시작
안녕하세요, 두 바퀴로 도시의 풍경과 감성을 기록하는 TACO입니다.
지난 추석 연휴, 늘 마음속에 그려왔던 로망인 브롬톤 부산여행을 드디어 와이프와 함께 다녀왔습니다.
매일 반복되던 익숙한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내고 싶을 때, 기차에 브롬톤을 싣고 훌쩍 낯선 도시의 공기를 마시는 것만큼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요?
익숙한 동대구역의 플랫폼을 출발해, 낯설지만 푸른 바다 내음 가득한 부산 청사포에 닿기까지.
대중교통과 브롬톤을 연계한 첫 라이딩, 그 **설렘의 시작**을 담은 브롬톤 부산여행의 첫 번째 기록을 지금부터 펼쳐봅니다.
저의 CHPT3와 와이프의 M4L 레이싱그린, 두 대의 브롬톤이 함께한 여정입니다.
🚂 새벽 공기를 가르며, 여정의 서막이 오르다
여행의 아침은 언제나 미묘한 설렘과 긴장이 교차합니다.
오랜만의 대중교통 여행, 그것도 브롬톤과 함께한다는 생각에 밤새 뒤척였나 봅니다. 다소 무거운 몸이었지만, 동대구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기차 시간보다 훨씬 앞서 있었죠.
23도까지 오른다는 낮 기온 예보와는 달리, 이른 아침의 공기는 제법 쌀쌀했습니다. 오히려 그 서늘함이 잠들었던 감각을 깨우는 듯 상쾌하게 느껴졌습니다.

텅 빈 동대구역 광장에 우리의 브롬톤 두 대를 나란히 세워두니, 마치 장대한 여정을 앞둔 두 명의 탐험가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플랫폼으로 향하는 길, 브롬톤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프레임과 뒷바퀴를 고정끈으로 살짝 묶어주고 안장을 길게 뽑아 손잡이 삼아 밀면, 이 작은 자전거는 더없이 우아한 여행 동반자가 되어주죠.
허리를 숙이거나 힘겹게 들 필요 없이, 이지휠(Eazy Wheels)이 또르르 소리를 내며 대합실을 가로지르는 모습은 언제 봐도 감탄스럽습니다.
어쩌면 브롬톤에 끌리는 이유는 이처럼 도시 생활의 모든 장벽을 사려 깊게 허물어주는 위대한 설계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낭만이라는 이름의 시간, 무궁화호에 몸을 싣고
우리를 부산으로 데려다줄 교통편은 무궁화호. 속도보다는 과정의 즐거움을 택한, 몇 년 만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선택이었습니다. KTX의 압축된 시간 대신, 창밖의 풍경이 느긋하게 흘러가는 여유를 온전히 누리고 싶었죠.

무궁화호의 좌석은 역시나 KTX보다 훨씬 넓고 편안했습니다. 시간이라는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 얻은 안락함이라고 할까요. 가장 신경 쓰였던 브롬톤 보관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열차의 맨 뒷좌석 뒤편, 마치 처음부터 그들을 위한 자리인 것처럼 두 대의 브롬톤이 비스듬히 쏙 들어갔습니다. 통행에 전혀 불편을 주지 않는 완벽한 공간이었죠. 접었을 때의 콤팩트함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동대구를 출발한 기차는 하양, 영천, 신경주를 거쳐 울산 태화강역을 지납니다. 창밖으로 스치는 낯선 도시의 이름들을 눈으로 좇으며,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달리고 있는 걸까요. 약 2시간 12분의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닌, 사색과 낭만을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 드디어 마주한 바다, 브롬톤 부산여행의 진짜 시작
아뿔싸!
신해운대역이 종점일 것이라는 안일한 착각은 하마터면 아찔한 결과를 낳을 뻔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내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우리가 내릴 역에 도착했음에도 열차 안은 여전히 분주했죠. 종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한 순간, 저와 와이프는 거의 반사적으로 양손에 브롬톤을 한 대씩 들고 부리나케 뛰다시피 내렸습니다.
조금만 머뭇거렸다면, 우리는 센텀역이나 부전역의 낯선 플랫폼에 서 있었을 겁니다.

무사히 내렸다는 안도감에, 우리를 아찔하게 스쳐 지나간 열차의 뒷모습을 끝까지 배웅했습니다. 여행이란 이처럼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모여 더욱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신해운대역 주출입구로 나오자, 아침의 쌀쌀함은 온데간데없고 따가운 햇살이 우리를 반겼습니다.
2013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하고 2016년에 ‘신해운대역’이라는 새 이름을 얻은 역사는 제법 깔끔하고 현대적인 모습이었죠. 이제 진짜 부산의 공기 속으로, 바다를 향해 페달을 밟을 시간입니다.
✨ 푸른 포구에서 발견한 보물 같은 풍경들
신해운대역에서 목적지인 청사포항까지는 약 3.5km. 자전거로 넉넉히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입니다.

드디어 눈앞에 펼쳐진 청사포의 바다. 그리고 그 바다를 배경으로 철길 건널목이 놓인 풍경은 왜 이곳이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샷’ 명소가 되었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했습니다.
마치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의 오프닝 한 장면 속으로 들어온 듯한 비현실적인 풍경. 그곳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풍경을 담고 있었고, 그중에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아 이곳의 인기를 실감케 했죠.

해변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중, 강렬한 붉은색 페라리 F8이 바람처럼 지나가는 뜻밖의 행운도 마주했습니다.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노란색 셀프 스튜디오 건물, ‘감성버스 정류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예쁜 버스 정류장까지. ‘푸른 모래의 포구’라는 뜻을 가진 청사포는 이름처럼 구석구석 보석 같은 풍경들을 품고 있었습니다.
정류장 옥상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하얀 등대와 푸른 바다는, 그야말로 완벽한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 마무리하며

동대구역의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시작된 우리의 첫 브롬톤 부산여행.
무궁화호의 낭만적인 시간과 신해운대역에서의 아찔했던 순간,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청사포의 눈부신 풍경까지.
브롬톤이라는 두 개의 작은 바퀴는 저희 부부에게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낯선 도시를 가장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열쇠가 되어주었습니다.
어느덧 시계는 12시를 넘기고, 바다 내음과 함께 허기짐이 밀려오기 시작하네요.
하지만 출출해진 배를 채우는 건 잠시 미뤄봅니다. 청사포의 또 다른 절경 ‘다릿돌전망대’가 가까이 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 갔다가 점심을 먹을 생각입니다.
그럼 다시 한 번 페달을 밟아볼까요? 저의 브롬톤 부산여행, 그 두 번째 이야기도 곧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