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아래 대구 불로동 고분군의 완만한 초록색 언덕과 그 위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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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불로동 고분군, 나홀로 나무와 1500년의 대화

안녕하세요, 사진과 감성을 기록하는 TACO입니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의 끝자락,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도심의 소란을 잠시 뒤로하고 싶었습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의 끝에 다다른 곳은, 시간이 박제된 듯 고요한 풍경이 펼쳐진다는 대구의 ‘불로동 고분군‘이었습니다. 이런 날의 여정에는 언제나 그렇듯 라이카 M10-R을 챙겨 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손으로 직접 조작해야 하는 불편함이 오히려 ‘사색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유일한 카메라. 그 묵직함이 유일한 동반자였던 그날 아침, 저는 단순히 유명한 ‘나홀로 나무’ 사진 한 장을 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천오백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의 흔적과 온전히 마주하고, 그 침묵이 건네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그 뜨거웠던 여름날, 거대한 능선 사이를 거닐며 마주했던 풍경과 제 마음에 새겨진 짧은 사색의 조각들을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 1. 역사의 문턱,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로

갈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국가사적 불로동 고분군'이라고 쓰여 있고, 영어와 한자로 병기된 입구 표지석. 뒤편으로는 푸른 하늘과 나무들이 보인다.
도심을 벗어나 팔공산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마주한 불로동 고분군의 첫인상. 현대적인 도로 옆에 자리한 낡은 표지석이 마치 다른 시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느껴집니다.

도심을 벗어나 팔공산으로 향하는 익숙한 길,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마자 불과 3분 거리에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공간이 나타납니다. 바로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262호, ‘불로동 고분군’의 시작점입니다.

현대적인 도로와 이정표를 지나 마주한 넓은 주차장은, 마치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처럼 느껴졌습니다. ‘입장료와 주차료가 모두 무료’라는 사실은, 이곳이 단지 관광지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우리의 역사임을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훅 끼쳐오는 8월의 열기는 숨이 턱 막힐 정도였지만, 주차장 한편에 마련된 정자는 잠시나마 그늘을 내어주며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나무 그늘 아래 아담한 갈색 목조 건물인 문화관광 해설사의 집이 자리하고 있다. 창문에는 '문화관광 해설사의 집'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고, 옆에는 관광 안내 배너와 QR코드가 보인다. 주변은 푸른 잔디와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다.
고분군 옆으로는 ‘문화관광 해설사의 집’이 보이네요. 혼자 조용히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면 역사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문을 두드려도 좋을 듯합니다.

그 옆으로는 ‘문화관광 해설사의 집’이 자리하고 있어, 혼자만의 사색도 좋지만 누군가의 깊이 있는 설명과 함께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싶은 이들을 위한 문이 열려있음을 보여주죠.

저는 해설을 예약하는 대신, 온전히 저만의 시선과 감각으로 고분군과 대화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정자와 해설사의 집을 지나 오른쪽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저는 마치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듯한 기묘한 설렘에 휩싸였습니다. ‘이제 곧이구나’.

🌳 2. 시간의 지평선에 홀로 선, ‘나홀로 나무’와의 첫 만남

파란 하늘 아래 부드러운 능선의 초록빛 고분들이 펼쳐져 있고, 그중 가장 높은 고분 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다. 고분 사이로 흙길이 나 있고, 길가에는 작은 가로등이 드문드문 서 있다.
주차장에서 잠시 걸었을 뿐인데, 눈앞에 거짓말처럼 비현실적인 풍경이 나타났어요. 파란 하늘과 초록빛 고분들 사이, 저 나무 한 그루가 모든 풍경의 주인공이었죠.

주차장에서 불과 5분 남짓 걸었을까요. 나지막한 언덕 너머로 거짓말처럼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파랗다 못해 시릴 것 같은 하늘 아래,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초록빛 고분들 사이로 ‘단 한 그루의 나무’가 오롯이 서 있었습니다. 바로 수많은 사진작과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불로동 고분군’의 상징, ‘나홀로 나무’였습니다.

그 풍경은 뜨거운 햇살마저 잊게 할 만큼 압도적이었습니다. ‘아름답다’는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부족한, 어떤 숭고함마저 느껴지는 장면이었죠.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나홀로 나무와 고분군의 풍경은 한층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M10-R의 뷰파인더 속 이중합치상이 선명하게 하나로 겹쳐지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나와 눈앞의 풍경만이 남는 듯한 기묘한 몰입감. 자동 초점의 편리함 대신, 숨을 고르며 제 손으로 직접 거리계를 맞추고 조리개를 조절하는 이 느리고 더딘 과정은 ‘천오백 년의 시간과 교감하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습니다. M10-R은 그저 풍경을 담는 기계가 아니라, ‘시간을 사색하게 만드는 도구’였습니다.

🤫 3. 천오백 년의 침묵, 불로동 고분군이 속삭이는 이야기

불로동 고분군 언덕 위에서 바라본 풍경. 잔디가 덮인 고분 능선 너머로 대구 시내의 아파트와 건물들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유적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하늘은 맑고 흰 구름이 떠 있다.
고분군 언덕에 서니, 발밑으로는 1,500년 전의 작은 왕국이, 눈앞에는 2025년의 도시가 펼쳐져 있었어요. 시간을 넘어 두 풍경이 한곳에 공존하는 모습이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죠?

나홀로 나무를 지나 본격적으로 고분군 사이로 발을 들였습니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210여 기의 고분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지름 15~20m, 높이 4~7m에 이르는 거대한 무덤들은 하나하나가 작은 산처럼 보였습니다. 이 고분들은 5세기에서 6세기경, 즉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당시 이 지역을 다스리던 강력한 정치 세력의 무덤이라는 사실은, 이곳이 단순한 공동묘지가 아니라 ‘하나의 작은 왕국’이었음을 짐작게 합니다.

3.1. 봉분 아래 잠든 이들은 누구일까?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배경으로, 푸른 잔디가 덮인 두 개의 둥근 고분이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고 있다. 왼쪽 고분 앞쪽으로는 흙길의 일부가 보인다.
작은 산처럼 보이는 저 부드러운 능선 아래, 과연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가 잠들어 있을까요? 겉모습은 평화롭지만, 그 속에는 금동관과 화려한 장신구들이 함께 묻혀 있었다고 해요.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걸으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 거대한 흙더미 아래, 과연 어떤 삶들이 잠들어 있을까?’. 발굴 조사에 따르면, 불로동 고분군의 무덤들은 대부분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경주 지역의 신라 고분들과 유사한 양식으로, 당시 이 지역이 신라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죠. 금동관, 장신구, 토기 등 수많은 껴묻거리(부장품)들이 함께 출토되었다는 사실은, 이들이 단순한 지배자를 넘어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존재들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저는 고분 하나하나를 스쳐 지나가며 그들의 삶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사랑하고, 슬퍼하고, 때로는 권력을 위해 치열하게 다투기도 했겠죠. 그들의 희로애락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이 거대한 봉분이 된 것이라 생각하니, 발걸음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졌습니다. 고분군은 죽은 자들의 공간이 아니라, ‘치열했던 삶의 흔적들이 남긴 거대한 기념비’였습니다.

3.2. 고분은 왜 언덕에 만들어졌을까?

불로동 고분군이 자리한 곳은 평지가 아닌 나지막한 구릉지입니다. 왜 그들은 이곳에 무덤을 만들었을까요? 고대 사회에서 무덤은 단순히 시신을 묻는 장소를 넘어, ‘그 집단의 권위와 힘을 과시하는 상징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언덕 위에 거대한 무덤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려 했던 것이죠. 또한, 탁 트인 이곳에서 자신들이 다스리던 땅을 내려다보며 사후 세계에서도 그 권세가 이어지기를 염원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이 고분군은 죽음을 위한 공간인 동시에, ‘삶과 권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공간’이었던 셈입니다.

🏙️ 4. 고분 언덕에서 바라본 도시, 과거와 현재의 공존

여러 개의 둥근 고분들이 언덕 아래로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대구 시가지의 건물들과 멀리 팔공산 능선이 보인다. 하늘은 푸르고 흰 구름이 흩어져 있다.
고분군 가장 높은 곳에 오르니, 발아래로는 천 년이 넘는 무덤들이, 눈앞으로는 빽빽한 대구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어요. 그 시간의 간극이 느껴지시나요?

고분군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자, 시야가 탁 트이며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발아래로는 천오백 년 전의 무덤들이 고요하게 누워있고, 시선을 조금만 멀리 돌리면 아파트와 빌딩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대구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자동차들과 희미하게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은, 제가 서 있는 이곳의 정적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이토록 선명하게 공존하는 곳이 또 있을까’. 마치 시간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1,500년 전, 이 언덕에 서서 자신들의 세상을 내려다보던 이들은 지금의 이 풍경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반대로, 저 번잡한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발밑에 이토록 거대한 역사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인지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 기묘한 공존의 풍경은 ‘시간의 연속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과거는 단절된 역사가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 현재의 우리를 이루고 있는 기반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 우리가 숨 쉬는 이 공기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의 삶과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는 것이겠죠. 그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풍경이 조금은 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 5. 뜨거운 햇살 아래, 온전한 ‘쉼’을 발견하다

푸른 잔디 언덕을 따라 비뚤게 놓인 넓적한 돌길이 아래로 이어져 있고, 길 끝에는 울창한 숲이 보인다. 맑은 날씨에 하늘에는 흰 구름이 떠 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이에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천오백 년의 시간을 품은 풍경 덕분인지 마음은 무척이나 충만해졌어요.

날씨가 너무 더운 탓에, 그리고 고분군 내에는 그늘이 많지 않아 오래 머물지는 못했습니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속은 무척이나 충만해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았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시간의 흐름 앞에서 제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를 깨닫는 순간, 오히려 저를 짓누르던 일상의 고민들이 사소하게 느껴졌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제게 ‘진정한 쉼’이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편안한 곳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더 큰 시공간 속에 놓아봄으로써 현재의 나에게서 잠시 벗어나는 경험’이라는 것을요. 디지털의 편리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 모든 것을 수동으로 맞춰야 했던 M10-R과의 시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깊이의 쉼을 발견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봄이나 가을,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에 돗자리와 간단한 도시락을 들고 다시 이곳을 찾아야겠습니다. 그때는 나홀로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책도 읽고,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온전한 하루의 여유를 누리고 싶습니다. 아마 그날의 경험은 또 다른 색깔의 감성으로 제 마음속에 기록되겠죠.

마무리하며

큰 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잔디밭 너머로, 부드러운 곡선의 푸른 고분들이 햇빛 아래 펼쳐져 있다. 가장 높은 고분 위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외로이 서 있고, 하늘은 밝고 깨끗하다.
뜨거운 여름날 잠시 찾았던 불로동 고분군은, 제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깊은 울림과 생각의 여백을 선물해 주었어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아닌, 시간을 사색하게 만드는 공간이었죠.

대구 불로동 고분군은 그저 옛 무덤들이 모여있는 역사 유적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죽음과 삶이 공존하며,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잠시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철학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뜨거운 여름날의 짧은 나들이는, 제 사진 앨범에 아름다운 사진 몇 장을 더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제 마음속에 깊은 울림과 생각의 여백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혹시 바쁜 일상에 쉼표가 필요한 분이 계신다면, 혹은 압도적인 시간의 풍경과 마주하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조용히 불로동 고분군으로 향해보시길 권합니다. 아마 그곳의 고분들은 천오백 년의 침묵으로,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와 이야기를 건네줄지도 모릅니다.


Shooting Info.

  • Camera: Leica M10-R
  • Lens: Leica Summilux-M 35mm f/1.4 ASPH
    Leica Noctilux-M 50mm f/1.2 Reissue

📍위치 및 방문 팁

  • 주소: 대구 동구 불로동 산1-16
  • 주차정보: 무료 주차 가능
  • 방문하기 좋은 계절: 제가 방문한 여름은 매우 더웠지만, 봄/가을에는 피크닉을 즐기기 좋아요.
  • 소요시간: 사진 촬영하며 천천히 둘러보면 약 1시간 정도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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