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여름날, 붉은 배롱나무 꽃이 활짝 핀 대구 서계서원의 고즈넉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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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카, 여행의 기록] 한여름의 끝, 대구 서계서원 배롱나무가 전하는 시간의 빛

안녕하세요, 사진과 감성을 기록하는 TACO입니다.

유난히 뜨거웠던 지난여름의 한가운데, 8월의 태양이 아직 그 기세를 잃지 않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손에 쥔 라이카 M10-R의 차가운 금속성마저 미지근하게 느껴지던 오후, 저는 문득 ‘백일의 약속’을 품고 피어나는 꽃을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며 피어나 늦여름까지 그 붉은빛을 잃지 않는다는 배롱나무. 대구에서 그 아름다움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는 서변동 서계서원 배롱나무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기에, 가장 찬란한 순간이 아닌 서서히 저물어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기록하기 위한 여정이었습니다.

Summilux-M 35mm f/1.4 ASPH 렌즈 너머로 마주한 그날의 풍경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 보실까요?


📜 1. 도심 속, 시간을 품은 고요한 서원

대구 서계서원의 정문인 향의문, 나무 문과 전통 기와지붕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서계서원으로 들어서는 첫 관문, 향의문(向義門).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나무 문과 기와지붕이 고요한 서원의 분위기를 미리 짐작게 합니다. 정면에 걸린 현수막은 서원을 찾은 방문객을 환영하는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는 듯합니다.

대구 북구 서변동, 아파트 단지와 빌라들이 익숙한 풍경을 이루는 도심 한가운데에 서계서원은 마치 섬처럼 고요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공간을 몇 걸음 벗어났을 뿐인데, 공기의 흐름부터 달라지는 듯한 기분 좋은 낯섦이 느껴지는 곳이죠.

서계서원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었던 이문화(李文和) 선생과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킨 이주(李膂) 선생, 두 분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공간입니다. 정조 5년인 1781년, 지역 유림들의 뜻이 한데 모여 창건되었으니, 24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묵묵히 이곳을 지켜온 셈입니다.

서원에 들어서는 향의문(向義門)을 지날 때, 잠시나마 일상의 소음과 번잡함을 내려놓고 경건한 마음으로 발을 딛게 됩니다. 작지만 단아한 서원의 첫인상은, 화려함보다는 오랜 세월이 빚어낸 기품으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듯했습니다.

M10-R의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서원의 첫 모습은 현대적인 주변 환경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을 전달해주었습니다. 35mm 화각이 주는 자연스러운 시야는 제 눈이 보는 그대로의 공간감을 담아내기에 완벽했습니다.

주차 정보: 서원 입구 옆 무료 주차장 (10대 이상 주차 가능)


🌺 2. 백일의 약속, 서계서원 배롱나무와의 첫 만남

대구 서계서원 주차장 옆에 핀 배롱나무
서계서원으로 향하는 길, 주차장 옆에서 붉게 피어난 배롱나무가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고즈넉한 서원 담장 너머로 보이는 현대적인 건물들의 모습이 묘한 대비를 이룹니다.

배롱나무는 참 신비로운 꽃나무입니다. 한 번에 모든 꽃을 피워내고 짧은 순간 화려하게 지는 벚꽃과 달리, 여러 날에 걸쳐 차례로 꽃을 피우고 지기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마치 백일 동안 붉은빛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여 ‘백일홍(百日紅)’, 또는 ‘목백일홍’이라 불리죠.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오랜 약속의 상징과도 같은 나무입니다.

제가 서계서원 배롱나무를 찾은 8월 중순은, 안타깝게도 그 백일의 약속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주차장 옆에서 저를 맞이한 배롱나무는 이미 많은 꽃잎을 떨군 채 아쉬운 흔적만을 간직하고 있었죠.

하지만 절정의 순간을 놓쳤다는 아쉬움보다는, 가장 화려한 순간이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집중해보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이 스러져가는 과정 속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그런 숨겨진 아름다움을 제 라이카로 담아보는 것이었죠.


🏛️ 3. 공간의 미학, 환성정과 강당을 거닐다

푸른 소나무가 서 있는 대구 서계서원 마당과 정면에 보이는 서계서원 강당의 모습
향의문을 지나자, 오랜 세월의 기품이 시야를 가득 채웠습니다. 듬직한 소나무 너머로 보이는 서계서원 강당의 단아한 모습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듭니다.

서원 마당으로 들어서면, 잘 가꾸어진 잔디와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정면에는 후학들을 가르치던 서계서원 강당이 듬직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방 3칸과 대청 2칸으로 이루어진 단정한 구조로, 주춧돌 위에 세워진 모습에서 견고한 세월의 힘이 느껴집니다.

라이카 M10-R의 조용한 셔터음은 고즈넉한 서원의 분위기를 전혀 해치지 않았습니다. 잠시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방문객의 더위를 식혀주기 위해 놓인 듯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이곳에서 학문을 논하던 선비들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푸른 하늘 아래 기품있게 서 있는 대구 서계서원 환성정의 정면 모습
서계서원에서 제 마음을 가장 오래 머물게 했던 공간, 환성정(喚惺亭)입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한 모습에서 깊은 울림이 느껴집니다.

강당 왼쪽 편에는 **’환성정(喚惺亭)’**이라는 이름의 작은 누각이 있습니다. 방 2칸과 마루 1칸으로 이루어진 아주 단아한 모습이죠. 개인적으로 서계서원에서 가장 마음이 끌렸던 공간입니다.

특히 환성정 옆에 서 있는 배롱나무 한 그루가 아직 제법 많은 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35mm 화각의 자연스러운 원근감으로 담아낸 그 분홍빛 꽃잎이 고색창연한 기와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와 같았습니다. 멀리 보이는 현대적인 도시의 건물들과의 부조화마저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대구 서계서원 환성정 옆 붉게 핀 배롱나무와 전통 건축, 배경으로 보이는 현대 도시 풍경
붉은 배롱나무 꽃잎과 고색창연한 기와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조화. 그 너머로 보이는 현대적인 도시의 풍경은 묘한 부조화 속에서 독특한 매력을 선사하며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옵니다.

🌇 4. 숭덕사 오르는 길, 시간의 경계를 넘다

대구 서계서원 숭덕사로 올라가는 계단과 그 위에 자리한 전례문의 모습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숭덕사로 향하는 길. 경건한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면, 시간의 경계와도 같은 전례문(典禮門)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서원 뒤편으로는 두 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 **숭덕사(崇德祠)**로 향하는 계단이 있습니다. 전례문(典禮門)을 지나 숭덕사로 오르는 길은, 서원에서 가장 높은 곳이자 가장 성스러운 공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수록 시야는 점차 넓어지고 마음은 더욱 차분해집니다.

계단을 오르는 길목에서 M10-R의 넓은 다이나믹 레인지가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강한 햇볕과 짙은 그늘이 교차하는 상황에서도 암부와 명부의 디테일을 모두 살려낼 수 있었거든요. 절정이 지난 배롱나무의 모습을 더 가까이 마주하며, 화려함은 덜하지만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꽃잎 하나하나가 더 애틋하게 다가왔습니다.

대구 서계서원 숭덕사 담장 너머로 보이는 전통 기와지붕과 현대적인 대구 도심의 아파트 풍경
숭덕사 담장 너머, 유려한 곡선의 기와지붕과 현대적인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장면은, 한여름의 무더위마저 잊게 할 만큼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숭덕사에 도착해 담장 너머를 바라보았습니다. 기와지붕의 유려한 곡선 너머로 펼쳐지는 푸른 하늘과 대구 도심의 풍경.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장면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잊게 할 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곳에 서서 선비들은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Summilux 35mm의 선명한 묘사력으로 담아낸 풍경 속에서 시간의 경계를 넘어 아득한 상상에 잠겨보는 순간이었습니다.


🌳 5. 270년의 속삭임, 보호수가 전하는 이야기

대구 서계서원 강당 앞에 위치한 수령 270년 보호수 배롱나무와 안내판
서계서원 강당 앞에서 270년의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보호수 배롱나무. 그 오랜 시간만큼이나 굵고 웅장한 자태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감을 느끼게 합니다. 옆에 놓인 안내판이 이 나무의 가치를 더욱 알려줍니다.

숭덕사에서 내려와 다시 앞마당을 거닐다, 이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특별한 존재와 마주쳤습니다. 강당 앞에 뿌리내린 거대한 배롱나무 한 그루. 가까이 다가가 보니 ‘보호수’ 팻말이 걸려 있었습니다. 2018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며, 추정 수령은 무려 270년에 달한다고 합니다.

서계서원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혹은 그보다 더 이전부터 이 자리를 지켜왔을지도 모르는 나무입니다. 수많은 학자들의 강론을 듣고, 나라를 걱정하는 선비들의 시름을 지켜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기억하며 270년의 세월을 온몸으로 견뎌온 것이죠.

M10-R의 4000만 화소 해상력으로 담아낸 굵고 구불구불한 줄기와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껍질은 그 자체로 서계서원의 살아있는 역사서였습니다. 이 나무 아래에서 잠시 숨을 고르니,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마치 오랜 이야기를 속삭여주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습니다.


✍️ Photographer’s Note

이번 한여름 오후의 기록을 위해 저는 라이카 M10-RSummilux-M 35mm f/1.4 ASPH 렌즈를 사용했습니다.

대구 서계서원, 처마 그늘 아래에서 햇볕이 내리쬐는 마당과 건너편 풍경을 바라본 시점
볕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날, 서원의 처마 밑은 시원한 그늘을 드리웁니다. M10-R의 넓은 관용도 덕분에 이렇게 극명한 명암 차이 속에서도 디테일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날처럼 볕이 강하고 그늘이 짙게 드리운 날에는 **M10-R의 넓은 관용도(Dynamic Range)**가 암부의 디테일을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서원의 처마 밑 그늘진 공간과 햇볕이 내리쬐는 마당의 노출 차이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죠.

또한 35mm 화각은 서원의 아담한 공간감을 왜곡 없이 담아내기에 완벽한 선택이었습니다. 광각 렌즈 특유의 부자연스러운 왜곡 없이, 제 눈이 본 공간의 이야기를 가장 정직하게 담아주는 조합이었습니다. Summilux 렌즈의 부드러운 보케는 배경을 아름답게 정리해주면서도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켜주었고요.

무엇보다 렌지파인더의 조용한 작동음은 고즈넉한 서원의 분위기를 전혀 해치지 않아, 더욱 몰입감 있는 촬영이 가능했습니다. 역시 라이카는 이런 정적인 공간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 실용 정보

📍 위치: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서계서원)
🚗 주차: 무료 주차장 완비 (10대 이상 주차 가능)
🌸 배롱나무 절정: 7월 말 ~ 8월 초
⏰ 관람 시간: 1시간 이내
📷 추천 촬영 시간: 오후 늦은 시간 (서향광으로 따뜻한 빛)
📱 촬영 장비: Leica M10-R + Summilux-M 35mm f/1.4 ASPH


마무리하며

대구 서계서원 환성정 앞, 소나무와 배롱나무가 어우러진 여름날의 풍경
서계서원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뷰파인더에 담은 환성정과 배롱나무. 가장 화려한 순간은 아닐지라도, 가장 깊은 여운을 남겨준 풍경입니다.

서계서원을 나서는 길, 저는 환성정 앞 배롱나무를 다시 한번 M10-R의 뷰파인더에 담았습니다. 비록 만개한 절정의 순간은 아니었지만, 그 덕분에 저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꽃이 지고 난 뒤의 쓸쓸함,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생명의 강인함, 그리고 오래된 공간이 품은 시간의 향기까지 말입니다.

만약 누군가 서계서원 배롱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7월 말에서 8월 초를 추천할 것입니다. 하지만 혹시 그 시기를 놓쳤더라도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세요. 한여름의 끝자락, 저물어가는 빛 속에서 마주하는 서계서원은 또 다른 깊이와 울림으로 우리를 맞아줄 테니까요.

뜨거운 태양 아래, 고요한 서원에서 보낸 짧은 시간은 제 라이카의 메모리 카드와 마음에 오랫동안 남을 소중한 기록이 되었습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여름의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죠. 계절의 변화 속에서 카메라는 또 어떤 풍경을 담아낼까요? M10-R의 고감도 성능이 어떤 놀라운 결과를 보여줄지, 또 다른 감성으로 채워질 다음 여정도 기대해주세요.


“모든 순간은 지나가지만, 기록된 순간은 영원히 남는다.”
– TACO’s Photography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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