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ica M EV1 리뷰 | 레인지파인더를 넘어선 라이카의 대전환
요즘 라이카 M 시리즈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아날로그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불리던 M이 드디어 변화를 택했으니까요.
2025년 10월, 라이카는 마침내 금기를 깼습니다. 새롭게 공개된 Leica M EV1은 M 시리즈 7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레인지파인더를 포기한 카메라입니다. 대신 전자식 뷰파인더(EVF)를 품었죠.
“눈으로 직접 본다”는 전통적 미학에서 “센서가 본다”는 디지털 현실로 넘어간 순간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M은 기계적 감각으로 초점을 맞추는 행위 자체를 예술로 여겨왔습니다. 1954년 M3부터 M11까지 이어진 그 유산은, 오히려 디지털 시대가 될수록 더욱 뚜렷해졌죠. 저 역시 그 철학을 오래도록 몸으로 익혀왔습니다.
M9-P와 함께한 시간은 제게 ‘불편함의 미학’을 가르쳐줬습니다. 그 이야기를 시간이 멈춘 사진을 위하여 — Leica M9-P 5년 사용기에서 남겼듯, 라이카 M의 본질은 언제나 느림 속의 몰입이었습니다.
그 후 M10-R으로 넘어오며 저는 그 ‘불편함’을 하나의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죠. 수동 초점의 불편함, 패럴랙스 오차, 어두운 환경에서의 초점 실패… 이 모든 게 M 시리즈만의 리듬이자 철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M EV1은 그 뿌리 깊은 신념에 균열을 냈습니다. 레인지파인더의 기계적 감각을 버리고, 전자식 파인더로 새로운 길을 연 것이죠.
하지만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닙니다.
‘직접 본다’에서 ‘센서가 본다’로의 전환 — 라이카가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한 진화로 읽힙니다.
이번 글에서는 Leica M10-R 유저의 시선에서 M EV1의 철학적 의미, 기술적 전환, 그리고 시장 전략까지 차분히 짚어보려 합니다.
🔭 1. 라이카 M의 정체성 | 레인지파인더 70년 역사가 담긴 철학

1954년 등장한 Leica M3는 카메라 역사에 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관련 포스팅 글: 전설을 만들다: 라이카 M3 탄생과 M 시리즈의 진화)
“사진은 셔터를 누르는 행위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M 시스템의 핵심은 ‘정확성’보다 ‘예감(anticipation)’이었습니다.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이 아닌, 눈이 직접 본 현실을 믿는 방식이었죠. 그 결과 M 시리즈는 항상 ‘불완전하지만 진실한 관찰’을 상징했습니다.
레인지파인더는 이 철학의 구체적 도구였습니다. 촬영자는 두 개의 이미지를 수동으로 일치시키며 초점을 맞췄고, 그 과정에서 시각과 감각, 기술이 동시에 작동하는 몰입의 경험을 얻었습니다.
제가 M10-R로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좋았던 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면 프레임 밖의 세계까지 함께 보이거든요. 피사체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예측하고 기다리는 그 감각, 그게 M의 진짜 매력이었습니다.
그런데 Leica M EV1은 이 ‘감각의 과정’을 기계적 시각으로 대체했습니다. 렌즈를 통해 들어온 실제 이미지를 EVF에 표시함으로써 ‘눈으로 직접 보는 세계’에서 ‘센서가 해석한 세계’로 초점이 옮겨진 거죠.
⚙️ 2. EVF 도입으로 달라진 것들 | M EV1의 3가지 핵심 변화

초점 정확도: 패럴랙스 오차 해결과 포커스 피킹
레인지파인더의 구조적 한계는 패럴랙스(시차)였습니다. 근거리 피사체나 밝은 조리개를 사용할 때 초점이 미세하게 어긋나는 경우가 많았죠.
저도 M10-R에 Summilux 50mm f/1.4를 물려서 근거리 인물 사진을 찍을 때 이 문제를 자주 겪었습니다. 분명 초점을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진을 확인하면 눈이 아닌 코나 귀에 초점이 가 있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특히 f/1.4나 f/0.95 같은 얕은 심도에서는 1~2mm 차이가 치명적이거든요.
EVF를 탑재한 M EV1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했습니다. 센서가 인식한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표시하므로, 확대 기능과 포커스 피킹(초점 강조)을 통해 정확도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끌어올렸습니다. 레인지파인더의 직관성과 미러리스의 정밀함을 융합한 결과입니다.
실시간 노출 확인: 촬영 전 결과물 미리보기
M EV1의 또 하나의 진보는 ‘노출의 가시화’입니다. 기존 M10-R이나 M11에서는 측광과 노출을 감각적으로 추정해야 했습니다.
M10-R을 쓰다 보면 이 부분이 가장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역광 상황이나 명암 대비가 큰 장면에서는 노출을 몇 번씩 조정하며 재촬영해야 하거든요. 디지털 시대에 라이브 히스토그램도 없이 촬영한다는 게 때론 비효율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EVF는 실시간 노출 시뮬레이션을 제공해, 촬영자가 ‘결과물의 색감과 밝기’를 사전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의 통제력을 높이면서도, 라이카 특유의 ‘순간의 감각’은 유지하는 절묘한 지점이죠.
M 마운트 렌즈의 잠재력 극대화
M EV1은 여전히 M 마운트 수동 렌즈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EVF 덕분에, 그 수동 초점의 정밀함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올라갔습니다.
제가 가진 Summilux 35mm f/1.4 II와 같은 렌즈는 광학 성능이 정말 뛰어납니다. 하지만 M10-R에서는 그 성능을 100%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초점이 1mm만 어긋나도 해상력이 꽤 떨어지거든요.
EVF가 있으면 Noctilux 50mm f/0.95 같은 대구경 렌즈도 정확하게 제 성능을 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라이카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수동 렌즈 철학이 이제야 기술적으로 완성된 형태로 돌아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3. ‘불편함’의 재해석 | M EV1이 바꾼 라이카의 철학

라이카는 오랫동안 ‘불편함’을 철학으로 삼았습니다. 수동 초점, 단순한 메뉴, 무겁고 느린 조작감. 그 모든 불편함은 결국 촬영 행위를 의식하게 만드는 장치였습니다.
M10-R을 쓰면서 저도 이 불편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AF도 없고, 손떨림 보정도 없고, 연사 속도도 느리죠. 하지만 그 불편함이 오히려 한 장 한 장을 신중하게 찍게 만들더라고요. 셔터를 누르기 전에 구도와 빛, 순간을 더 오래 고민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M EV1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편의성을 철학적으로 수용한 첫 번째 M이에요. 다시 말해, 불편함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바꾼 모델이죠.
이건 단순히 촬영을 쉽게 만드는 게 아니에요. 사진가로 하여금 “나는 왜 불편함을 감수해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죠. 즉, EV1은 ‘편리함’의 도입이 아니라, 불편함의 재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 4. 왜 지금 EVF인가 | 라이카의 3가지 전략적 선택

라이카가 지금 EVF M을 내놓은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젊은 세대 진입 장벽 낮추기
현재 M 시리즈의 주요 고객층은 40대 후반 이상으로, 젊은 세대의 진입 장벽은 높았습니다. 레인지파인더 조작법을 배우는 것 자체가 진입 장벽이거든요. EVF는 사용성을 낮추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유저층을 유입시키는 관문입니다.
Q, SL 시리즈 기술 통합
라이카는 이미 SL 시리즈(풀프레임 미러리스)와 Q 시리즈(고정렌즈 EVF 카메라)를 통해 EVF 노하우를 축적했습니다. M EV1은 이 두 라인업의 기술적 언어를 M에 통합한 결과입니다.
실제로 EV1의 EVF 패널은 SL3와 동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상도는 576만 화소, 리프레시 레이트는 120fps로 미러리스 카메라 수준의 성능을 갖췄죠.
하이브리드 M을 위한 사전 포석
EV1은 ‘실험’이 아니라 ‘예고’입니다. 다음 세대에서는 레인지파인더와 EVF 둘 다 탑재한 하이브리드 M 시스템이 등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후지필름의 X-Pro 시리즈처럼 하이브리드 뷰파인더를 탑재하는 방식이죠. EV1은 그 방향성을 검증하는 첫 번째 실물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 5. M EV1 외관 분석 | M11과 닮았지만 다른 디자인 언어

M EV1의 외형은 M11과 거의 동일합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라이카의 디자인 언어가 변했습니다.
전통적인 뷰파인더창이 사라지고, EVF 파인더가 상단을 차지했습니다. 셔터 다이얼은 그대로지만, 조작감은 전자식 감속 구조로 변경되었죠. 시리얼 각인과 상단 로고는 SL 라인과 통일되었습니다.
M10-R과 비교하면 더 명확합니다. M10-R은 기계적 다이얼과 뷰파인더가 주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강했어요. 하지만 EV1은 외형은 유지하되, 내부는 완전히 디지털화된 구조입니다.
M EV1은 ‘디자인의 진화’가 아니라 ‘언어의 통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이카는 이제 M, Q, SL 시리즈를 하나의 조형 체계로 묶으며 브랜드 정체성을 하나의 시각적 생태계로 통합하고 있습니다.
📈 6. 가격 $8,995 공개 후 반응 | 전통주의 vs 실용주의의 대립
M EV1의 가격은 $8,995 (약 1,250만 원)입니다. M11과 동일한 가격대로, ‘보급형 실험’이 아니라 정상 라인업의 새로운 축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라이카 커뮤니티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전통주의자들은 “레인지파인더 없는 M은 더 이상 M이 아니다”라고 비판합니다. 반면 실용주의자들은 “드디어 현실적인 Leica M이 나왔다”고 환영하죠.
M10-R을 오래 사용해온 입장에서 보면, 두 입장 모두 이해가 됩니다. 레인지파인더의 감성과 몰입감은 분명 특별한 경험이거든요. 하지만 동시에, 기술적 한계 때문에 놓친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판매 데이터로 보면 방향은 뚜렷합니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2024년 기준 Leica Q 시리즈가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EVF 사용자가 브랜드 주류로 자리 잡았습니다. M EV1은 그 트렌드를 M 시리즈 안으로 끌어들인 전략적 결과물입니다.
아래는 M10-R과 M11-P, 그리고 M EV1의 주요 차이점을 정리한 비교표입니다.
| 항목 | Leica M10-R | Leica M11-P | Leica M EV1 |
|---|---|---|---|
| 뷰파인더 | 레인지파인더 (광학식, 0.73x) | 레인지파인더 (광학식, 0.73x) | EVF (전자식, 576만 화소, 120fps) |
| 센서 | 40MP CMOS | 60MP BSI CMOS | 60MP BSI CMOS (추정) |
| 초점 방식 | 수동 초점 (패럴랙스 존재) | 수동 초점 (패럴랙스 존재) | 수동 초점 (포커스 피킹, 확대 지원) |
| 노출 확인 | 사후 확인 | 사후 확인 | 실시간 프리뷰 |
| 무게 | 660g (바디+배터리) | 530g (바디+배터리) | 484g (바디+배터리) |
| 가격 | $8,295 (약 1,150만 원) | $9,195 (약 1,280만 원) | $8,995 (약 1,250만 원) |
| 출시연도 | 2019 | 2023 | 2025 |
🧭 7. 결론 | M EV1은 누구를 위한 카메라인가?

라이카 M EV1은 단순히 EVF를 탑재한 첫 M이 아닙니다. 이건 “사진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질문입니다.
1954년 M3가 ‘직접 본다’는 철학을 제시했다면, 2025년 EV1은 ‘센서를 통해 본다’는 방식을 제시합니다. 관찰의 주체가 사람에서 기계로 옮겨간 거죠.
M10-R을 오래 사용해온 입장에서 보면, 이 변화는 양가적입니다. 레인지파인더의 직관적 감성, 기계적 몰입감, 예측 불가능성이 주는 재미… 이 모든 걸 포기하는 게 아쉽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EVF가 제공하는 정확성과 효율성도 분명 매력적이에요.
하지만 라이카는 여기서 본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보는 방식의 다양성’을 열었어요. 레인지파인더의 직관적 감성과 EVF의 정확성을 같은 철학 아래에서 공존시키려는 시도, 그게 M EV1이 진짜 던지는 질문입니다.
결국 M EV1은 라이카가 묻는 질문 하나로 귀결됩니다.
“당신은 세계를 얼마나 정확히, 혹은 얼마나 자유롭게 보고 싶은가.”
저 역시 이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M10-R의 레인지파인더를 계속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EV1의 EVF로 넘어갈 것인가.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고민이기도 합니다.
이건 단순한 카메라가 아니라, 시선의 철학을 다시 묻는 도구입니다. 라이카가 70년간 지켜온 철학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확장하고 재해석하는 시도. 그게 M EV1의 진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M EV1을 보면서 계속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굳이 하나를 포기해야 했을까?”
후지필름 X-Pro 시리즈는 이미 했습니다. 레인지파인더와 EVF를 동시에 탑재한 하이브리드 뷰파인더를 말이죠.
다이얼 하나로 광학식과 전자식을 오가는 그 경험. 라이카가 못 할 이유는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M 마운트와 레인지파인더의 원조인 라이카가 하면 완전히 다른 차원이 될 겁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가능성을 파헤쳐보려 합니다.
–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가?
– M 시리즈의 두께와 무게를 유지할 수 있나?
–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라이카가 정말 이걸 원할까?**
→ 다음 이야기: 「하이브리드 M의 가능성 — 레인지파인더와 EVF, 공존의 기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