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멈춘 사진을 위하여 1부] 라이카 M9-P 후기: 디지털 시대, ‘불편함’을 선택한 이유
안녕하세요, 사진과 감성을 기록하는 TACO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빠르고, 더 똑똑하고, 더 편리해지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시대입니다. 스마트폰 카메라는 AI로 완벽한 사진을 자동으로 만들어주고, 미러리스 카메라는 초당 수십 장의 연사와 8K 동영상까지 촬영합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11년에 태어난, 심지어 동영상 촬영 기능조차 없는 라이카 M9-P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들려드릴 라이카 M9-P 후기는 단순한 구형 장비에 대한 회고가 아닙니다. 이것은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사진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들었던 한 시대의 마지막 낭만에 대한 5년간의 실증적 탐구 기록입니다.
제 사진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5년을 함께한 동반자, 라이카 M9-P. 이 카메라가 어떻게 저의 사진 철학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는지, 그 ‘불편함’을 기꺼이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모든 여정을 객관적 데이터와 주관적 경험을 아우르며 가감 없이 풀어내고자 합니다.
📜 1. 시대의 증인, M9-P의 출생과 기술적 배경

라이카 M9-P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1년 6월,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기술적 정점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던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이미 2년 전인 2009년, 라이카는 세계 최초의 35mm 풀프레임 디지털 레인지파인더 카메라인 M9을 통해 사진계에 충격파를 던진 바 있습니다. M9-P는 그 M9의 ‘프로페셔널’ 버전으로, 더욱 본질에 집중하고 싶은 전문 사진가들을 위한 라이카의 철학적 대답이었습니다.
1.1. 절제의 미학: P(Professional)에 담긴 의미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절제의 미학’이었습니다. 라이카의 상징과도 같았던 전면의 ‘붉은 딱지(Red Dot)’와 모델명 각인을 과감히 삭제했습니다. 대신 상판에 클래식한 필기체 ‘Leica’ 각인을 음각으로 새겨 넣었죠. 이것은 ‘사진가는 카메라 뒤에 숨어 세상을 관찰하는 존재’라는 라이카의 오랜 철학, ‘Das Wesentliche (본질 집중)’의 완벽한 구현이었습니다.
또한, 긁힘에 강한 ‘사파이어 글라스’를 LCD 커버에 채용하여 신뢰성을 높인 것은, 이 카메라가 스튜디오가 아닌 거친 현장을 위한 전문가용 도구임을 분명히 한 설계 철학의 표현이었습니다.
1.2. 기술적 제원 분석: 2011년의 한계와 선택
| 항목 | 라이카 M9-P 제원 | 동시대 경쟁 모델 비교 |
|---|---|---|
| 출시 연도 | 2011년 6월 | 같은 해 캐논 5D Mark II, 니콘 D700 출시 |
| 단종 시기 | 2012년 M(Typ 240) 출시 후 자연스럽게 단종 | 약 1년간의 짧은 생산 기간 |
| 센서 | 18.5MP Full-Frame Kodak KAF-18500 CCD | 경쟁사는 이미 CMOS 주력 전환 완료 |
| ISO 감도 | 기본 ISO 160~2500 (확장 ISO 80) | 경쟁사 대비 현저히 제한적 |
| 셔터 속도 | 1/4000초 ~ 32초(벌브 약 4분) | 기계식 포컬플레인 셔터 채용 |
| 뷰파인더 | 0.68x 배율 광학식 레인지파인더 | 유일한 35mm 디지털 레인지파인더 |
| LCD | 2.5인치 23만 화소 TFT (사파이어 글라스) | 동시대 기준으로도 현저히 낮은 해상도 |
| 연사 속도 | 초당 2매 | 버퍼 한계로 실질적 연사 불가 |
| 저장 매체 | SD/SDHC (최대 32GB) | CF 카드 미지원으로 프로 워크플로우 제약 |
| 크기/무게 | 139×80×37mm, 600g | 황동 바디로 인한 고급스러운 무게감 |
| 가격 | 출시가 $7,995 (약 900만원) | 동급 DSLR 대비 3-4배 가격 |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제원입니다. 특히 23만 화소의 LCD는 촬영된 사진의 초점이 맞았는지조차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수준이죠. 하지만 M9-P의 진정한 가치는 이 숫자 너머에 있었습니다.
✨ 2. 운명적 만남: 나의 첫 라이카 선택 이유
2.1. 시장 상황과 구매 결정 과정
제가 M9-P를 처음 손에 쥔 것은 2019년, 이미 후속 기종들이 여럿 출시되어 M9-P가 ‘현역’에서 물러난 지 한참 뒤였습니다. 당시 중고 시장에서 M9-P는 출시가의 약 40~50% 수준인 400만 원 전후로 거래되고 있었고, 주변의 모든 이들이 CMOS 센서의 월등한 성능과 라이브 뷰의 편리함을 이야기할 때, 저는 오히려 이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묵직한 쇳덩이’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2.2. 물리적 경험: 황동 바디가 주는 신뢰감

상하판을 황동(Brass)으로 제작한 M9-P의 무게감은, 경량화를 위해 플라스틱과 마그네슘을 사용하는 요즘 카메라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신뢰감’과 ‘밀도감’을 전달했습니다. 600g이라는 무게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한 장의 사진에 대한 ‘무게감’을 물리적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심리적 장치였습니다.
전원을 켜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귀와 손끝으로 전해지는 ‘철컥’하는 기계식 셔터의 소리와 진동은 단순한 촬영 행위를 넘어 ‘내가 기계를 온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일깨웠습니다. 모든 것이 전자식으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이토록 순수한 기계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제게는 경이로운 경험이었습니다.
🤔 3. 심층 분석: 라이카 M9-P가 ‘불편함’을 설계한 철학적 배경
M9-P를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이 카메라가 ‘왜 그토록 불편하게 설계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카메라에는 자동 초점(AF), 손떨림 보정, 동영상, 고속 연사, 고화질 LCD 등 현대 디지털카메라가 당연하게 제공하는 거의 모든 편의 기능이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있습니다.
3.1. 라이카의 설계 철학: Reduction to the Max
이것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닌, 라이카의 철학적 선택이었습니다. 1954년부터 라이카가 표방해온 ‘Reduction to the Max’ 철학은 사진가에게서 ‘결과물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오직 빛과 구도, 그리고 결정적 순간에만 집중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3.2. 불편함의 교육적 효과: 5년간의 실증 데이터
5년간 M9-P를 주력 카메라로 사용하며 수집한 개인적 통계를 공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총 촬영 컷 수: 약 13,000여 장
- 평균 일일 촬영량: 7장 정도 (정말 적게 찍었네요)
- 초점 실패율: 약 20~30% (수동 초점의 한계, 자연스레 팬포커스 촬영 증가)
- 의도한 결과물 달성률: 약 60% (타 카메라 사용 시 45% 대비 15% 향상)
뷰파인더 중앙의 작은 이중상을 합치며 수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행위, 줌 렌즈 대신 발로 뛰어다니며 화각을 결정하는 과정. 이 모든 ‘불편함’은 촬영 과정을 더디게 만들지만, 역설적으로 사진가를 피사체와 더 깊이 교감하게 하고 한 장의 사진에 더 많은 고민을 담게 만듭니다.
3.3. 현대적 관점에서의 재평가
2024년 현재 시점에서 M9-P의 설계 철학을 재평가해보면, AI와 자동화가 지배하는 사진 환경에서 ‘인간의 주체성과 의도성을 복원’하려는 선구적 시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필름 카메라의 부활과 ‘슬로우 포토그래피’ 운동의 확산은 M9-P가 일찍이 제시했던 가치관이 시대를 앞선 혜안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 4. 코닥 CCD: 아날로그의 영혼을 품은 디지털 심장

M9-P를 전설로 만든 것이 절제된 디자인과 기계적 완성도라면, 이 카메라에 영혼을 불어넣은 것은 단연코 ‘코닥 KAF-18500 CCD 센서’입니다.
4.1. CCD vs CMOS: 기술적 비교 분석
| 비교 항목 | M9-P CCD 센서 | 동시대 CMOS 센서 |
|---|---|---|
| 전력 소모 | 높음 (배터리 수명 350장) | 낮음 (배터리 수명 800장+) |
| 고감도 성능 | ISO 1600 이후 급격한 화질 저하 | ISO 6400까지 실용적 |
| 데이터 처리 속도 | 느림 (연사 제약) | 빠름 (고속 연사 가능) |
| 색감 특성 | 풍부한 원색, 아날로그적 질감 | 선명하고 정확한 색재현 |
| 다이나믹 레인지 | 좁음 (약 11스탑) | 넓음 (약 14스탑) |
| 제조 비용 | 높음 | 상대적으로 낮음 |
기술적으로 CCD는 CMOS에 비해 전력 소모가 많고, 고감도 성능이 떨어지며, 데이터 처리 속도가 느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카가 이 센서를 고집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대체 불가능한 색감과 질감’ 때문이었습니다.
4.2. M9-P만의 독특한 이미지 특성

M9-P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디지털 데이터’라기보다는 한 폭의 ‘회화’에 가깝습니다. 특히 풍부한 빛 아래에서 보여주는 원색의 깊이와 꾸덕함은 마치 잘 숙성된 코닥크롬 필름을 연상시킵니다. 인위적으로 선명함을 강조하는 최신 카메라들과 달리, 빛과 색의 경계를 부드럽게 뭉개며 만들어내는 입체감은 M9-P만의 독보적인 영역입니다.
4.3. 센서 부식 문제: 치명적 결함의 실체
물론 이 매력적인 심장에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있었습니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센서 부식(Sensor Corrosion)’ 문제입니다. 습도와 온도 변화에 민감한 CCD 센서의 특성상, 센서 표면에 검은 반점이나 줄무늬가 나타나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보고되기 시작했습니다.
라이카는 2017년까지 무상 수리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센서 교체뿐이었습니다. 현재 중고 M9-P 구매 시 가장 주의 깊게 확인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센서 부식 여부입니다.
⏳ 5. 느림의 미학: 사진을 ‘찍는’ 감각을 되찾은 5년
5.1. 촬영 프로세스의 변화
결론적으로 M9-P는 제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편리함, 속도, 완벽성을 포기해야 했죠. 하지만 그 대가로 ‘사진을 찍는 진짜 감각’이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을 주었습니다.
모든 것이 자동화된 카메라를 사용할 때, 우리는 셔터 버튼을 ‘누르는(Pressing)’ 행위를 합니다. 하지만 M9-P와 함께할 때, 우리는 조리개와 셔터 속도, 초점을 온전히 내 의지대로 조절하며 한 장의 사진을 ‘만들어(Taking)’ 냅니다.
5.2. 창작 과정에서의 심리적 변화
이 느리고 더딘 과정 속에서 저는 비로소 멈춰 서서 빛을 관찰하고, 피사체와 눈을 맞추며, 프레임 안과 밖의 세계를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M9-P는 제게 ‘사진은 속도의 경연이 아니라, 깊이의 탐구’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 고마운 스승이었습니다.
5.3. 현재적 의미와 가치
2024년 현재, AI가 완벽한 사진을 자동으로 생성해주는 시대에 M9-P의 가르침은 더욱 소중해졌습니다. 기술이 대신 해주는 선택들 속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드는 카메라. 그것이 바로 라이카 M9-P의 진정한 가치입니다.
📸 6. 구매 가이드: M9-P를 고려하는 분들께
6.1. 추천 대상
- 필름 카메라 경험이 풍부한 사진가
- 수동 조작을 즐기는 클래식 카메라 애호가
- 독특한 색감과 질감을 추구하는 예술 사진가
- 컬렉션 가치를 고려하는 라이카 마니아
6.2. 비추천 대상
- 빠른 AF와 연사가 필요한 스포츠/보도 사진가
- 동영상 촬영이 필요한 멀티미디어 크리에이터
- 고감도 촬영이 빈번한 실내 사진가
- 완전 자동 모드에 익숙한 초심자
마무리하며: 단순한 카메라를 넘어선 철학적 파트너
지금까지 M9-P와의 첫 만남부터 그 속에 담긴 철학까지, 5년간의 여정을 시작하는 첫 번째 라이카 M9-P 후기를 들려드렸습니다. M9-P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낡고 비싸고 불편한 구닥다리 카메라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카메라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저만의 방식을 갖게 해준 파트너이자, 사진에 대한 태도를 가르쳐 준 철학적 스승이었습니다.
M9-P를 통해 배운 가장 소중한 교훈은 이것입니다: 좋은 사진은 최고의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촬영자의 명확한 의도와 깊은 관찰에서 탄생한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때, 우리는 진짜 중요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논쟁적인 카메라의 심장이자 영혼, [2부. 마지막 라이카 CCD 센서: 흉내 낼 수 없는 색감과 치명적 결함 사이] 편을 통해 M9-P가 만들어내는 그 독보적인 결과물의 비밀과 센서 부식이라는 치명적인 단점까지, 더욱 심층적이고 기술적인 분석을 나눠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M9-P에 대한 경험이나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댓글로 나눠주세요.
다음 글 예고: [시간이 멈춘 사진을 위하여 2부] 마지막 라이카 CCD 센서: 흉내 낼 수 없는 색감과 치명적 결함 사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