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타 브랜드 스토리 10편] 자동차를 사랑한 CEO, 도요다 아키오
2009년 6월 23일, 도요타 자동차 주주총회. 53세의 도요다 아키오가 사장 취임을 선언했습니다.
타이밍은 최악이었습니다. 리콜 사태가 본격화되기 직전, 금융위기로 자동차 산업 전체가 무너지던 시점. 토요타는 창사 이래 첫 영업손실 4,610억 엔을 기록했습니다.
창업주 도요다 기이치로의 손자. 도요다 가문의 3세대. 무거운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침몰하는 배의 선장이 된 겁니다.
근데 아키오는 달랐습니다. 서류만 보는 경영자가 아니었어요. 그는 레이싱 드라이버였습니다. 가명 ‘모리조(Morizo)’로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레이스를 완주한 CEO. 차를 사랑하는 사람.
“토요타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바로 ‘드라이빙의 즐거움’이다.”
리콜 사태로 신뢰를 잃은 토요타. 근데 아키오가 본 문제는 더 깊었습니다. 토요타 차들이 너무 ‘실용적’이고 ‘무난’해졌다는 것. 아무도 토요타를 타며 설레지 않는다는 것.
13년간 아키오는 토요타를 바꿨습니다. 리콜 위기를 극복했고, 스포츠카를 부활시켰고, 조직 문화를 재정비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 회장직을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토요타를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로 다시 만들고 싶었습니다. 모빌리티 기업이 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좋은 차를 만드는 회사여야 합니다.”
거인을 다시 일으켜 세운 남자. 레이싱 드라이버 CEO. 도요다 아키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 위기의 시작 – 최악의 타이밍에 CEO가 되다
2009년, 토요타가 무너지던 날

숫자가 말해줍니다. 2009년 토요타의 상황을.
- 영업손실: 4,610억 엔 (창사 이래 첫 적자)
- 순손실: 4,369억 엔
- 판매량 감소: 전년 대비 28.5% 급감
- 리콜 규모: 수백만 대 (그리고 더 늘어날 예정)
2008년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직격탄을 맞았죠. GM과 크라이슬러는 파산 직전까지 갔고, 토요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근데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급발진 논란. 플로어 매트, 가속 페달 결함. 2009년 8월 세일러 가족 사고. 그리고 본격화될 대규모 리콜.
이 모든 게 아키오가 사장이 되던 바로 그 시점에 터졌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후계자?
아키오는 토요타 가문 출신이었지만, CEO 후보 1순위는 아니었습니다.
1956년생. 게이오대학 법학부 졸업 후 미국 베이브슨 대학에서 MBA 취득. 1984년 토요타 입사. 늦은 나이었습니다. 특혜 없이 말단부터 시작했죠.
이사회 멤버, 상무, 전무를 거쳤지만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습니다. “도요다 가문이라서 올라간 거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어요.
2005년, 부사장 승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섰습니다. 근데 여전히 조용했습니다. 화려한 리더십이나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었죠.
그런 그가 2009년 6월, 53세의 나이에 사장이 됐습니다. 선배 임원들을 제치고. 왜?
당시 토요타 이사회는 판단했습니다. “지금 토요타에 필요한 건 도요다 가문의 DNA다. 창업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위기의 시대엔 뿌리가 중요하다는 거였습니다.
첫 기자회견 – “나는 준비됐다”
2009년 6월 23일, 취임 기자회견. 아키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자동차를 사랑합니다. 토요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는 드라이버입니다.”
기자들은 의아했습니다. CEO 취임사에 “드라이버”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아키오는 계속했습니다.
“토요타는 지금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극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100년 역사가 있고, 그 역사를 만든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할아버지 기이치로 사장님이 만든 이 회사를, 제 세대가 더 강하게 만들어 다음 세대에 물려줄 책임이 있습니다.”
말은 좋았습니다. 근데 현실은 냉혹했죠. 몇 달 뒤 세일러 가족 사고가 터지면서, 아키오는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 시련의 시간 – 리콜 사태와 의회 청문회
2010년 2월, 워싱턴에 서다

준비된 성명서를 읽는 그의 손이 떨렸습니다. 영어로 사과하고, 설명하고, 약속했습니다.
청문회가 끝나고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토요타는 끝났다고 생각하십니까?”
아키오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목소리는 단호했습니다.
“아닙니다. 토요타는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제가 보장합니다.”
일본으로 돌아와서
미국에서 돌아온 아키오는 토요타 본사 전 직원을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이번 일은 제 책임입니다. 사장인 제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직원들은 충격받았습니다. CEO가 직접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니까.
아키오는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토요타는 고객을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는 다시 고객의 신뢰를 얻을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걸리든.”
그날부터 아키오의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현장으로 간 CEO
아키오는 서류에서 벗어났습니다. 공장으로 갔습니다. 생산 라인에 섰습니다. 작업자들과 이야기했습니다.
“이 차, 당신 가족이 타도 될까요?”
직원들에게 물었습니다. 품질 검사를 하던 직원, 용접을 하던 직원, 도장을 하던 직원.
“제 가족이 탈 차입니다. 그러니 완벽해야 합니다.”
아키오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마음을 잊지 맙시다. 우리는 타인의 가족을 태울 차를 만듭니다.”
[타이이치 오노가 만든 현지현물(Genchi Genbutsu)] 원칙. 현장에 가서, 현물을 보라. 아키오는 이걸 실천했습니다.
미국 딜러들도 방문했습니다. 리콜로 힘들어하는 딜러 사장들을 일일이 만났습니다. 사과하고,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토요타는 당신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함께 이겨냅시다.”
시간이 흐르며
2010년은 지옥이었습니다. 리콜, 소송, 벌금, 언론 공격. 끝이 없었죠.
2011년도 쉽지 않았습니다. 3월 동일본 대지진. 토요타 공장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부품 공급망이 끊겼습니다. 생산이 중단됐죠.
근데 2012년부터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판매량이 회복됐습니다. 품질 평가가 올라갔습니다. 고객들이 돌아왔습니다.
아키오는 버텼습니다.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 모리조의 진짜 꿈 – “다시, 재미있는 차를”
레이싱 드라이버 CEO
아키오에겐 비밀이 하나 있었습니다. 가명 ‘모리조(Morizo)’.
2009년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레이스. 모리조라는 이름으로 출전한 드라이버가 있었습니다. 렉서스 LFA를 몰고 완주했죠.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모리조는 도요다 아키오였습니다. 토요타 사장이 레이싱 드라이버로 출전한 거였어요.
왜? “차를 만드는 사람은 차를 운전할 줄 알아야 한다.”

아키오는 진심으로 차를 사랑했습니다. 주말마다 서킷에 갔습니다. 토요타 차를 몰았습니다. 직접 느꼈습니다. “이 차, 재미없어.”
토요타가 잃어버린 것
2010년대 초, 토요타 라인업을 보면 이랬습니다. 캠리, 코롤라, 프리우스, RAV4. 전부 실용차였습니다.
품질? 최고. 신뢰성? 완벽. 연비? 탁월. 근데 재미? 없었습니다.
아키오는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토요타를 사는 이유가 ‘고장 안 나니까’뿐이라면, 그건 자동차 회사로서 실패다.”
[도요다 기이치로가 처음 차를 만들 때] 꿈꿨던 것. “일본인이 운전하고 싶어 하는 차.” 단순히 움직이는 차가 아니라, 타고 싶은 차.
토요타는 그걸 잃었습니다. 언제부터? 너무 ‘합리적’이 되면서부터.
“86을 만들자”
2012년, 토요타는 놀라운 차를 내놨습니다. 86(일본명 86, 북미명 FR-S).

2도어 쿠페. 후륜구동. 자연흡기 엔진. 200마력. 가격은 2만 5천 달러.
성능 괴물은 아니었습니다. 근데 재밌었습니다. 운전하는 즐거움. 코너링의 쾌감. 엔진 소리.
출시 발표회에서 아키오가 직접 무대에 올랐습니다.
“제가 이 차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왜? 제가 타고 싶었으니까요.”
청중이 웃었습니다. CEO가 “내가 타고 싶어서”라니.
아키오는 진지했습니다.
“토요타는 실용차만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자동차 회사입니다. 자동차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86은 성공했습니다. 판매량은 많지 않았지만, 의미는 컸습니다. “토요타도 재미있는 차를 만들 수 있구나.”
스포츠카 부활 프로젝트
86은 시작이었습니다. 아키오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2019년, 수프라 부활. 전설의 스포츠카가 17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BMW와 공동 개발. 3.0L 직렬 6기통 터보. 382마력. 4.3초 만에 100km/h.
출시 발표회에서 아키오는 직접 수프라를 몰고 등장했습니다. 무대에서 타이어를 태우며(burnout) 도넛 턴을 했죠.
관중은 환호했습니다. “CEO가 저러도 되나?” 아키오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수프라는 이렇게 타는 겁니다.”
GR(Gazoo Racing) 브랜드 런칭. 토요타의 고성능 라인. GR 야리스, GR 카롤라, GR 86. 전부 아키오의 승인을 거쳤습니다.
“이 차들은 판매량을 위한 게 아닙니다. 토요타 DNA를 증명하기 위한 겁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사랑합니다.”
직접 테스트하는 CEO
아키오는 모든 신차를 직접 몰았습니다. 서킷에서, 일반 도로에서, 고속도로에서.

개발팀에게 피드백했습니다. “핸들이 너무 가볍다.” “브레이크 감이 이상하다.” “가속 반응이 늦다.”
엔지니어들은 처음엔 당황했습니다. CEO가 이렇게 디테일하게 지적하다니. 근데 곧 깨달았죠. “사장님, 진짜 아신다.”
아키오는 말했습니다.
“저는 토요타 차의 첫 번째 고객입니다. 제가 만족하지 못하는 차를 고객에게 팔 수 없습니다.”
🔧 조직 문화 재정립 – “사람 중심의 토요타로”
“내가 직접 할게”
리콜 사태 이후, 아키오는 조직 구조를 뜯어고쳤습니다.

품질 보고 라인 단순화. 지역 → 본사 직통. 중간 필터 제거. 모든 품질 이슈는 사장에게 직접 보고.
아키오는 매주 품질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작은 문제도 직접 봤습니다. “이게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의사결정 속도 향상. 기존 토요타는 consensus 문화였습니다.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진행. 안전하지만 느렸죠.
아키오는 바꿨습니다. “중요한 결정은 빨리 내린다. 책임은 내가 진다.”
젊은 인재 등용. 나이와 연차보다 능력. 30대 임원도 나왔습니다. 파격이었죠.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
아키오는 직원들에게 말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시도하지 않는 게 더 큰 실패입니다.”
[싸이언 브랜드 실패] 사례를 교육 자료로 썼습니다. “우리는 실패에서 배웁니다. 실패는 자산입니다.”
개발팀에게 자율성을 줬습니다. “좋은 차를 만드세요.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GR 야리스 개발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엔지니어들이 제안했습니다. “랠리 베이스 모델을 만들고 싶습니다.”
경영진은 회의적이었습니다. “판매량이 적을 텐데?”
아키오가 승인했습니다. “만드세요. 우리는 재미있는 차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GR 야리스는 출시되자마자 매진됐습니다. 전 세계 자동차 매니아들이 환호했죠.
“사람을 존중한다”
도요다 사키치가 강조했던 것. “기계는 사람을 돕기 위해 있다. 사람을 대체하기 위함이 아니다.”
아키오는 이 철학을 되살렸습니다.
자동화 공장을 만들되, 사람이 중심. 로봇이 할 수 없는 섬세한 작업은 장인의 손으로.
토요타 일본 공장에는 ‘타쿠미(匠, 장인)’ 제도가 있습니다. 수십 년 경력의 숙련공들. 이들의 기술을 젊은 세대에게 전수.
아키오는 타쿠미들을 초대해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당신들이 토요타의 자산입니다.”
🌍 글로벌 리더십 – 위기를 기회로

지역 맞춤 전략
아키오 시대 토요타는 ‘글로벌’이면서도 ‘로컬’이었습니다.
미국에선 트럭. 풀사이즈 픽업 툰드라, SUV 세쿼이어. 미국인들이 원하는 차.
유럽에선 하이브리드. 환경 규제에 맞춰. 프리우스, 야리스 하이브리드.
아시아에선 실용차. 저렴하고 효율적인 차. 비오스, 위고.
각 지역 CEO에게 권한을 줬습니다. “당신들이 그 시장을 제일 잘 압니다. 결정하세요.”
전동화 리더십 유지
전기차 물결이 밀려왔습니다. 테슬라, BYD. 새로운 플레이어들.
토요타는 조심스러웠습니다. 순수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에 집중. 프리우스로 쌓은 기술력 때문이었죠.
아키오는 명확했습니다.
“우리는 ‘멀티 패스웨이’ 전략을 취합니다.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차. 고객이 선택할 수 있게.”
비판도 있었습니다. “토요타가 전기차 전환에 뒤처졌다.” 근데 아키오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트렌드를 쫓지 않습니다. 고객에게 진짜 필요한 게 뭔지 고민합니다.”
2020년대, 배터리 가격, 충전 인프라, 전력망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토요타 전략의 지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대응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토요타 공장들 피해. 부품 공급망 붕괴.
아키오는 즉각 대책본부를 꾸렸습니다. 본인이 직접 지휘.
부품 공급망 재구축. 대체 공급업체 확보. 글로벌 네트워크 활용.
피해 지역 지원. 토요타 차량 무상 제공. 복구 장비 지원. 직원 봉사 활동.
생산 재개. 2개월 만에 정상화. 업계 최단 기록.
위기 대응 리더십을 보여줬습니다. 빠르고, 정확하고, 인간적이었습니다.
🎯 아키오의 유산 – 13년간의 변화
숫자로 보는 성과
아키오 재임 기간 (2009-2023) 주요 지표:
| 항목 | 2009년 | 2023년 | 변화 |
|---|---|---|---|
| 글로벌 판매량 | 781만대 | 1,042만대 | +33% |
| 영업이익 | -4,610억엔 | 3조엔 | 흑자 전환 |
| 시가총액 | 약 10조엔 | 약 35조엔 | +250% |
| 하이브리드 판매 | 120만대/년 | 360만대/년 | +200% |
숫자만 봐도 놀랍습니다. 근데 진짜 변화는 숫자 밖에 있었습니다.
브랜드 이미지 변화
2009년 토요타 = 신뢰할 수 있지만 지루한 차
2023년 토요타 = 신뢰할 수 있고 재미있기도 한 차
GR 시리즈 성공. 젊은 층 유입. 브랜드 이미지 변화.
자동차 매체들 평가:
“Toyota has rediscovered its soul.” – Car and Driver
“The most exciting boring car company.” – Top Gear
“Toyota proves you can be reliable AND fun.” – Motor Trend
조직 문화 변화
직원 만족도 조사 결과 개선. 젊은 직원들 이직률 감소. “토요타가 변하고 있다”는 인식.
도전하는 문화. GR 브랜드, 우븐 시티 프로젝트, 전고체 배터리 개발. 보수적이던 토요타가 도전적으로.
소통하는 리더십. 아키오는 직원들과 직접 대화했습니다. SNS로 소통했습니다. 타운홀 미팅을 자주 열었죠.
“사장님이 우리 말을 듣는다.” 직원들은 느꼈습니다.
💭 TACO가 본 아키오 리더십
진정성이 이긴다
아키오는 완벽한 CEO가 아니었습니다. 화려한 프레젠테이션 실력도 없었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가도 아니었어요.
근데 진심이 있었습니다. 차에 대한 사랑. 토요타에 대한 책임감. 고객에 대한 존중.
2010년 의회 청문회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사과하던 모습. 공장 생산 라인에 서서 직원들과 이야기하던 모습. 직접 차를 몰며 테스트하던 모습.
사람들은 봤습니다. “저 사람, 진짜다.”
제 M340i를 운전하며 생각합니다. BMW도 리더가 중요하겠구나. 브랜드는 결국 사람이 만드니까.
뿌리를 잊지 않는 리더십
아키오가 강조했던 것. “우리의 DNA로 돌아가자.”
[도요다 사키치의 발명가 정신]. [기이치로의 도전 정신]. [타이이치 오노의 개선 정신]. 100년 토요타의 뿌리.
리콜 사태라는 위기 속에서, 아키오는 미래가 아닌 과거를 봤습니다. “우리가 왜 존재하는가?” 답은 100년 역사 속에 있었습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위기 때 중요한 건 정체성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걸 아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균형의 예술
아키오는 균형을 맞췄습니다.
전통 vs 혁신: 토요타 DNA를 지키되,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음
실용 vs 감성: 신뢰할 수 있는 차를 만들되, 재미도 추구
글로벌 vs 로컬: 세계 1위 기업이되, 각 지역 특성 존중
속도 vs 신중함: 빠른 의사결정을 하되, 품질은 타협 없이
이건 쉽지 않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치기 쉬운데, 아키오는 중심을 잡았습니다.
자동차 업계에서 ‘지루하지만 안전한’ 선택만 하던 토요타가, 아키오 시대에 ‘GR 야리스’ 같은 차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래서
아키오는 2023년 회장직을 내려놓았습니다. 67세. 14년간의 여정.

마지막 주주총회 연설에서 그는 말했습니다.
“저는 토요타를 사랑합니다. 자동차를 사랑합니다. 이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토요타는 앞으로도 고객을 위해 존재할 것입니다. 좋은 차를 만들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사명입니다.”
단순한 말이었습니다. 근데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청중은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직원들 중 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리콜 사태로 무너지던 거인을 다시 세운 남자. 레이싱 드라이버 CEO. 모리조. 도요다 아키오.
그는 증명했습니다. 위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진정성 있는 리더십은 통한다고. 그리고 자동차를 사랑하는 마음이 회사를 구할 수 있다고.
🔮 다음 편 예고: ⚡ [토요타 브랜드 스토리 11편] 전기차 전쟁, 토요타의 선택은?
아키오가 물러나고, 새로운 시대가 왔습니다. 전기차 혁명. 테슬라는 시총 1위가 됐고, BYD는 중국을 장악했습니다. 토요타는? “전기차 전환이 늦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근데 정말 그럴까요? 토요타는 정말 뒤처진 걸까요? 아니면 다른 전략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전고체 배터리, 멀티 패스웨이 전략, bZ 시리즈. 거인은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아키오가 남긴 유산은 전기차 시대에도 통할까요?
다음 편에서 토요타의 현재와 미래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TACO와 함께하는 토요타 이야기, 다음 11편[전기차 전쟁, 토요타는 왜 ‘다른 길’을 선택했나]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