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들꽃 사이에 놓인 핫셀블라드 중형 필름 카메라. 특유의 정사각형 바디와 웨이스트 레벨 파인더가 보이며,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보케 속에서 HNCS 색감의 진가를 보여주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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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셀블라드 색감의 비밀 — HNCS가 만드는 ‘있는 그대로의 색’

요즘 카메라 시장을 들여다보면서 자꾸 핫셀블라드에 눈이 갑니다.

라이카로 찍은 사진을 라이트룸에서 열 때면, 저는 습관처럼 채도를 살짝 내리고 톤커브를 만집니다. 라이카 특유의 진득한 색감을 더 끌어내기 위해서죠. 그런데 핫셀블라드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혀 다릅니다.

“RAW 파일 열자마자 완성되어 있어요.” “보정할 게 없어요. 아니, 보정하면 오히려 망쳐요.”

같은 소니 센서를 쓰는 후지필름 GFX와 비교해도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고 합니다. 스펙 시트상으로는 똑같은 1억 화소 중형 센서인데, 왜 핫셀블라드 사진만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까요?

정답은 ‘HNCS(Hasselblad Natural Colour Solution)’에 있습니다.

오늘은 핫셀블라드가 70년 넘게 쌓아온 색채 과학의 정수, 그리고 라이카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연스러움’을 구현하는 이 기술에 대해 파헤쳐 보겠습니다.

🎨 HNCS란 무엇인가? — 핫셀블라드 색감이 다른 이유

HNCS는 단순한 색보정 프로필이 아닙니다. 핫셀블라드만의 색채 재현 철학이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아우르는 통합 솔루션입니다.

핵심 원리: “센서가 본 색 그대로”

대부분의 카메라는 센서에서 받은 정보를 ‘보기 좋게’ 가공합니다. 채도를 높이고, 콘트라스트를 강조하고, 특정 색상(특히 파란 하늘, 초록 잎사귀)을 인공적으로 부스팅하죠.

핫셀블라드는 정반대입니다.

“인간의 눈이 보는 색과 카메라가 기록하는 색의 간극을 최소화한다.”

HNCS 색보정 소프트웨어의 컬러 패치 비교 화면 3개와 하단의 색 정확도 측정 장비. 각기 다른 색 재현 결과를 보여주며 핫셀블라드의 과학적 색채 교정 과정을 시각화한 이미지
HNCS는 감이 아닌 측정으로 색을 만듭니다. 수백 개의 컬러 패치를 기준점 삼아 센서가 본 색과 실제 색의 차이를 최소화하죠. 이 과학적 접근법이 핫셀블라드 사진을 ‘정확하게’ 만듭니다.

이게 HNCS의 출발점입니다. 과장도, 왜곡도 없이, 그 순간의 빛과 색을 있는 그대로 담아냅니다.

70년의 노하우: NASA와 함께 만든 기준점

핫셀블라드가 색감에 집착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69년 아폴로 11호 달 착륙입니다. NASA는 핫셀블라드에게 단 하나의 조건을 걸었습니다.

“달 표면의 색을 정확하게 기록하라.”

예쁘게 찍을 필요 없었습니다. 과학적으로 정확해야 했습니다. 이때부터 핫셀블라드는 ‘색 정확도’라는 강박에 가까운 기준을 세웠고, 이 DNA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 HNCS 기술 분석 — 핫셀블라드 컬러 사이언스의 핵심 구조

HNCS는 크게 세 단계로 작동합니다.

1단계: 센서 캘리브레이션

핫셀블라드는 모든 X 시스템 카메라에 개별 센서 교정 데이터를 심습니다. 같은 모델이라도 센서마다 미세한 편차가 있는데, 이를 공장 출하 전에 하나하나 보정합니다.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 아시나요? 대량생산 카메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소니, 캐논, 니콘 모두 센서 개별 교정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핫셀블라드 카메라 바디의 센서 부분을 천으로 정밀하게 클리닝하는 기술자의 손. 개별 센서 캘리브레이션 과정을 보여주는 흑백 이미지로 장인정신과 품질관리를 표현
HNCS의 첫 단계는 센서 캘리브레이션입니다. 공장에서 출하되기 전, 모든 카메라의 센서를 개별적으로 교정하죠. 대량생산 시대에 이런 수작업 품질관리를 고집하는 브랜드는 핫셀블라드뿐입니다.

2단계: 색공간 매핑

센서에서 받아들인 빛 정보를 RGB 색공간으로 변환할 때, 핫셀블라드는 독자적인 컬러 매트릭스를 사용합니다.

일반 카메라들이 sRGB나 Adobe RGB 같은 표준 색공간에 데이터를 끼워 맞춘다면, 핫셀블라드는 자체 기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중간톤(Mid-tone)의 색 전환이 부드럽고 계조가 풍부합니다.

3단계: 톤 커브 최적화

마지막으로 명암비를 결정하는 톤 커브입니다.

  • 하이라이트: 날아가지 않고 부드럽게 롤오프됩니다.
  • 섀도우: 뭉개지지 않고 디테일을 살립니다.
  • 콘트라스트: 과하지 않게, 눈으로 본 것처럼.

결과적으로 핫셀블라드 사진은 “밋밋하다”는 평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게 의도입니다. 화려한 채도나 강렬한 대비 대신, 편집 여지를 최대한 남겨두는 것이 HNCS의 철학입니다.

🆚 라이카 vs 핫셀블라드 색감 비교 — 자연스러움의 두 가지 해석

라이카도 ‘자연스러운 색감’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라이카와 핫셀블라드의 ‘자연’은 결이 다릅니다.

라이카와 핫셀블라드의 색감 철학을 비교하는 컬러 팔레트. 왼쪽은 따뜻한 어스톤의 버건디, 브라운, 골드 컬러 칩들로 라이카의 필름 감성을 표현하고, 오른쪽은 중성적인 베이지, 그레이, 아이보리 컬러 칩들로 핫셀블라드의 정확한 색재현을 표현한 이미지
두 브랜드의 색감 철학을 컬러 팔레트로 시각화했습니다. 왼쪽 따뜻한 어스 톤이 라이카의 낭만적 필름 감성을, 오른쪽 중성적인 톤이 핫셀블라드의 과학적 정확성을 상징합니다. 같은 장면을 찍어도 느낌이 다른 이유, 바로 이 색 철학의 차이 때문입니다.
특성 라이카 핫셀블라드
색감 방향성 따뜻하고 진득한 필름 감성 투명하고 중성적인 디지털 정확성
채도 살짝 높음 (특히 레드, 옐로우) 절제됨 (과장 없이 담백)
콘트라스트 중간톤이 묵직함 부드럽고 계조가 풍부함
후보정 여지 적음 (이미 완성된 느낌) 많음 (RAW의 관용도가 넓음)
철학 “사진가의 눈으로 본 세상” “과학자의 눈으로 본 세상”

라이카는 ‘기억 속의 색’을 재현합니다. 약간 로맨틱하고, 향수를 자극하는 색이죠. 반면 핫셀블라드는 ‘측정된 색’입니다.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에 가깝습니다.

어느 쪽이 더 좋냐고요? 그건 취향입니다. 다만 많은 사진가들이 라이카로 사람을 찍고, 핫셀블라드로 풍경과 상업 작업을 한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 HNCS 실사용 가이드 — RAW 촬영과 보정 워크플로우

핫셀블라드 Phocus 소프트웨어가 실행된 대형 모니터와 그 아래 배치된 핫셀블라드 X 시스템 카메라 4대. 모니터 화면에는 산악 풍경 속 인물 사진 편집 화면이 표시되어 있으며, 하단 필름스트립에는 여러 썸네일이 보임. HNCS RAW 편집 워크플로우의 전체 시스템을 보여주는 이미지
HNCS는 카메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X 시스템 하드웨어와 Phocus 소프트웨어가 만나 비로소 완성되는 통합 솔루션이죠. 화면 속 사진을 보세요. 후보정 없이도 이미 완성된 느낌, 이게 바로 HNCS입니다.

1) RAW 워크플로우가 핵심입니다

JPEG은 HNCS의 20%만 경험하는 겁니다. 핫셀블라드 RAW 파일(.3FR)은 16비트 컬러 뎁스를 지원합니다. 이 넓은 색공간과 계조를 온전히 활용하려면 무조건 RAW로 촬영해야 합니다.

2) Phocus가 HNCS의 진가를 보여줍니다

핫셀블라드 전용 RAW 편집 소프트웨어 Phocus는 HNCS를 100% 활용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라이트룸도 핫셀블라드 파일을 열 수 있지만, Phocus에서만 쓸 수 있는 ‘Hasselblad Film Simulation’ 프리셋들이 있습니다. 특히 ‘Natural’ 프리셋은 정말 손댈 게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3) 보정은 최소한으로

HNCS의 매력은 “안 만지는 것”입니다.

  • 노출 ±0.3EV 이내
  • 화이트밸런스 미세 조정
  • 필요하면 하이라이트/섀도우만 살짝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합니다. 채도 올리고 콘트라스트 높이는 순간, HNCS가 애써 담아낸 섬세함이 다 날아간다고 합니다.

4) 인물 촬영에서도 탁월합니다

중형 카메라는 풍경 전용? 아닙니다. HNCS는 피부톤 재현에서도 탁월합니다.

특히 아시아인 피부의 미묘한 노란기를 과장 없이 담아냅니다. 라이카가 피부를 ‘따뜻하게’ 표현한다면, 핫셀블라드는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상업 인물 사진에서 핫셀블라드를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 HNCS 단점 정리 — 핫셀블라드 색감의 한계

1) SNS에선 밋밋해 보일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은 펀치 있는 사진을 좋아합니다. 채도 높고, 콘트라스트 강하고, 한눈에 ‘와!’ 하는 사진이요.

왼쪽에는 스마트폰 화면에 표시된 산악 풍경 사진이 작고 디테일이 압축되어 보이고, 오른쪽에는 같은 사진이 대형 프린트로 표현되어 풍부한 색감과 섬세한 계조가 드러남. HNCS 색감이 작은 화면에서는 밋밋하지만 큰 사이즈에서 진가를 발휘함을 보여주는 비교 이미지
왼쪽은 스마트폰 화면, 오른쪽은 대형 프린트로 본 모습입니다. HNCS의 섬세한 계조와 중간톤의 풍부함은 작은 화면에선 밋밋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A2 이상 크기로 인화하거나 큰 모니터에서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미묘한 차이가 핫셀블라드가 상업 사진과 아트 프린트에서 선택받는 이유입니다.

HNCS는 그런 사진이 아닙니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보면 “뭐야, 색이 안 나오네?” 소리 들을 수도 있습니다.

이 색감의 진가는 큰 모니터에서, 혹은 프린트에서 드러납니다. A2 이상 크기로 인화했을 때, HNCS의 섬세한 계조가 비로소 빛을 발합니다.

2) 초보자에겐 불친절합니다

소니나 후지필름은 바로 쓸 수 있는 ‘필름 시뮬레이션’ 같은 프리셋을 잔뜩 줍니다. 찍자마자 예쁩니다.

핫셀블라드는 그런 거 없습니다. 기본 HNCS 프로필 하나 달랑 주고 “알아서 써”입니다.

3) 영상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X2D는 아예 동영상 기능이 없지만, X1D II 같은 구형 모델은 영상 녹화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HNCS는 사진 전용입니다. 영상에선 이 색감을 제대로 못 살립니다.

🔄 핫셀블라드 X2D vs 후지필름 GFX — 같은 센서, 다른 색감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겁니다.

“X2D랑 GFX 100 II, 둘 다 소니 센서 쓰잖아요. 그럼 똑같은 거 아닌가요?”

후지필름 GFX 100 II와 핫셀블라드 X2D 100C의 정면 비교 사진. 두 카메라 모두 렌즈가 분리된 바디 상태로 중형 센서가 노출되어 있음. 같은 소니 센서를 사용하지만 서로 다른 색감 철학을 가진 두 중형 미러리스 카메라의 비교 이미지
왼쪽 후지필름 GFX, 오른쪽 핫셀블라드 X 시스템. 둘 다 소니의 같은 1억 화소 센서를 사용하지만, 결과물의 느낌은 확연히 다릅니다. 센서는 재료일 뿐, 그 위에 어떤 색채 철학을 입히느냐가 핵심입니다.

아닙니다. 센서는 재료일 뿐, 요리는 다릅니다.

마치 같은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도 프랑스 바게트와 일본 식빵이 다른 것처럼, 센서는 시작점일 뿐입니다.

후지필름의 접근: 필름 에뮬레이션

후지필름은 자사의 필름 유산을 디지털로 옮기는 데 집중합니다. Velvia, Provia, Astia 같은 전설적인 필름의 색감을 재현하죠.

결과물은 ‘즉시 완성도 높은 JPEG’입니다. 후보정 없이도 예쁩니다. SNS 업로드하기 딱 좋습니다.

핫셀블라드의 접근: 중성적 진실

핫셀블라드는 필름을 흉내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필름보다 더 정확하게”를 지향합니다.

RAW 파일은 밋밋해 보이지만, 편집 관용도가 압도적입니다. 하이라이트를 2스톱 내려도 계조가 살아있고, 섀도우를 3스톱 올려도 노이즈가 적다고 합니다.

구분 후지필름 GFX (필름 시뮬레이션) 핫셀블라드 X2D (HNCS)
방향성 필름의 낭만적 재현 디지털의 과학적 정확성
JPEG 직출 매우 만족스러움 다소 밋밋함
RAW 후보정 보통 수준 압도적 관용도
주 사용처 다재다능 (풍경, 인물, 스냅) 상업, 아트, 아카이브

간단히 말하면, 후지는 ‘만족’을 주고, 핫셀은 ‘가능성’을 줍니다.

💡 HNCS가 특별한 이유 — 핫셀블라드 색감의 본질

HNCS를 들여다보고 나니, 핫셀블라드가 왜 이렇게 비싼지 이해가 됩니다.

단순히 센서 크기나 화소 수로 승부하는 게 아닙니다. 70년 넘게 쌓아온 색채 과학, NASA와 함께 만든 ‘정확성에 대한 집착’, 그리고 사진을 ‘데이터’로 보는 스웨덴 특유의 차갑고 냉철한 접근법.

라이카가 ‘찍는 행위’에 집중한다면, 핫셀블라드는 ‘기록된 결과물’에 집중합니다.

“이 색이 정말 진짜일까?”

라는 질문에, 라이카는 “진짜보다 더 아름답게”라고 답하고, 핫셀블라드는 “측정 가능한 수준에서 진짜로”라고 답합니다.

어느 쪽이 더 낫냐고요? 그건 여러분의 사진 철학에 달렸습니다.

핫셀블라드 중형 필름 카메라의 웨이스트 레벨 파인더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파인더 스크린에는 꽃이 핀 자연 풍경이 보임. 필름 시대부터 이어져 온 핫셀블라드의 색채 철학과 HNCS의 뿌리를 상징하는 이미지
웨이스트 레벨 파인더 속 세상을 있는 그대로 담고자 했던 철학. HNCS는 필름 시대 핫셀블라드가 추구했던 색 정확도를 디지털로 계승한 것입니다. 70년 전통의 DNA는 지금도 X2D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HNCS는 단순한 색보정 기술이 아닙니다.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핫셀블라드의 대답입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지금도 많은 사진가들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다음 글 예고] V 시스템 500C/M — 필름 중형의 상징

디지털 이야기만 했으니, 이제 필름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핫셀블라드의 전설은 사실 여기서 시작되었죠. 1957년 등장해 지금까지도 중고 시장에서 사랑받는 500C/M. 왜 이 카메라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완벽한 카메라’로 불릴까요? 다음 글에서는 필름 중형 카메라의 교과서, V 시스템의 심장부를 파헤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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