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 M 실버 크롬 바디에 장착된 50mm 렌즈와 투명 케이스에 보관된 녹티룩스 렌즈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모습. 디지털 시대에도 작동하는 M 시스템의 호환성을 보여주는 제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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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시대의 M 렌즈, 과거와 현재의 연결

라이카 M 렌즈 완전 정복 시리즈 | 시즌 1: 역사와 기술 (5/5)

M10-R로 녹티룩스 50mm f/1.2를 처음 써봤을 때, 묘한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이 렌즈는 비록 최근에 복각되었지만, 그 뼈대는 1960년대 필름 카메라를 위해 설계된 광학 구조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런데 2025년의 디지털 센서 위에서도 완벽하게 작동하더라고요. 개방 f/1.2에서도 선명한 해상도, 정확한 색 재현, 그리고 특유의 감성까지.

“필름 시대 렌즈가 어떻게 최신 디지털 바디에서 이렇게 잘 나올 수 있지?”

라이카 M 렌즈의 역사는 1930년대부터 시작됐습니다. 엘마, 주미크론, 주미룩스, 녹티룩스… 이 렌즈들은 모두 ‘필름’이라는 화학적 매체를 위해 태어났죠. 하지만 지금은 전자 신호로 이미지를 만드는 디지털 센서 위에서 빛을 맺습니다.

필름과 디지털. 이 둘은 빛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렌즈 입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상대를 만난 셈이죠. 그런데도 M 렌즈는 여전히 작동합니다. 어떤 렌즈는 70년 전 설계 그대로인데도 말이죠.

이번 편에서는 필름 시대에 설계된 M 렌즈가 디지털 센서를 만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라이카는 이 간극을 어떻게 메워왔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 필름과 디지털, 근본적인 차이

필름과 디지털 센서를 나란히 놓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면 무엇이 보일까요?

컬러 필름과 흑백 필름의 단면 구조를 보여주는 다이어그램. 젤라틴 보호층, 유제층, 접착층, 필름 베이스, 하레이션 방지층 등 여러 층이 색상별로 구분되어 표시되어 있으며, 왼쪽에는 코닥 필름 롤이 함께 그려져 있음
필름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빛이 유제층의 은 입자와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구조죠. 비스듬한 빛에도 비교적 관대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필름의 구조

필름은 두께가 있는 여러 층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 보호층 (Protective Layer)
  • 유제층 (Emulsion Layer): 빛에 민감한 은 입자가 불규칙하게 분포됨
  • 기재층 (Base Layer): 지지대 역할
  • 하레이션 방지층 (Anti-halation Layer)

빛이 렌즈를 통과해 필름에 닿으면, 은 입자가 화학 반응을 일으킵니다. 이 반응은 빛의 각도에 비교적 관대합니다. 빛이 비스듬히 들어와도, 직각으로 들어와도 유제층 속 은 입자는 반응하죠.

디지털 센서의 구조

반면 디지털 센서는 구조적으로 훨씬 복잡하고 까다롭습니다.

  • 마이크로 렌즈 (Microlens): 빛을 모으는 집광판
  • 컬러 필터 (Color Filter Array): 색 정보를 분리
  • 포토다이오드 (Photodiode): 빛을 전기로 변환
  • 배선층 (Wiring Layer): 신호 전달

각 픽셀 위에는 아주 작은 렌즈인 마이크로 렌즈가 있습니다. 이 렌즈는 빛이 우물(Well) 깊숙한 곳에 있는 포토다이오드까지 도달하도록 돕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마이크로 렌즈는 빛이 수직으로 들어올 것을 전제로 설계됩니다. 비스듬한 빛은 옆 픽셀로 새거나(크로스토크), 아예 바닥의 포토다이오드에 닿지 못할 수 있습니다.

🔬 텔레센트릭 설계의 딜레마

렌즈 후면에서 나오는 빛이 센서에 어떤 각도로 닿는가. 이것이 디지털 시대 렌즈 설계의 핵심입니다.

텔레센트릭 광학 설계를 보여주는 광선 다이어그램. 피사체에서 나온 빛이 100mm 렌즈와 75mm 렌즈, 조리개를 거쳐 이미지 평면에 수직으로 도달하는 과정이 빨강, 초록, 파랑 광선으로 표시되어 있음
텔레센트릭 설계에서는 모든 광선이 센서에 수직으로 닿습니다. 하지만 M 마운트의 짧은 플랜지 백(27.8mm)으로는 이런 복잡한 광학계를 구현하기 어렵죠.

텔레센트릭(Telecentric) 광선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렌즈 후면에서 나오는 모든 빛이 센서에 수직(90도)으로 꽂히는 것입니다. 이런 광선을 텔레센트릭 광선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센서 전체에 균일한 광량이 전달되고, 색수차와 비네팅이 획기적으로 줄어듭니다.

왜 M 렌즈는 텔레센트릭이 아닐까?

하지만 M 렌즈 대부분은 텔레센트릭 설계가 아닙니다. M 마운트의 플랜지 백(마운트와 센서 사이 거리)은 27.8mm에 불과합니다. 이 짧은 거리 안에서 렌즈를 작게 만들려다 보니, 필연적으로 빛이 퍼지면서 들어갑니다.

특히 21mm나 28mm 같은 광각 렌즈일수록 문제가 심합니다. 렌즈 후면이 센서에 매우 가깝게 붙기 때문에, 센서 주변부로 갈수록 빛이 아주 비스듬하게 입사할 수밖에 없죠.

그럼 M 렌즈는 디지털 센서와 궁합이 안 맞는 걸까요?

🎨 마젠타 캐스트, 그리고 센서 최적화

초기 디지털 M 바디 사용자들은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습니다.

컬러 캐스트(Color Cast) 현상

2000년대 중반, 라이카가 처음 내놓았던 디지털 바디 M8이나 M9 시절에는 사진 주변부가 붉은색(마젠타)이나 푸른색(시안)으로 물드는 현상이 빈번했습니다. 이를 컬러 캐스트라고 합니다.

광각 렌즈로 촬영한 건축 사진의 컬러 캐스트 비교. 왼쪽은 보정 전으로 하늘과 건물 가장자리에 심한 마젠타색 물듦이 보이고, 오른쪽은 6-Bit 코딩 보정 후 자연스러운 파란 하늘로 복원된 모습
왼쪽은 광각 M 렌즈로 촬영한 보정 전 이미지입니다. 주변부에 심한 마젠타 캐스트가 보이죠. 오른쪽은 6-Bit 코딩으로 자동 보정한 결과입니다. 이 작은 바코드 하나가 이런 차이를 만듭니다

특히 광각 렌즈에서 심했습니다. 21mm나 28mm로 하늘을 찍으면, 가장자리가 붉거나 푸르게 변했죠.

원인:

  • 비스듬한 입사각
  • 컬러 필터 어레이(CFA)와의 상호작용
  • 마이크로 렌즈의 한계

빛이 비스듬하게 들어오면, 각 픽셀의 컬러 필터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합니다. 빨강 필터가 있는 픽셀에 녹색 빛이 들어가거나, 그 반대 상황이 생기는 거죠.

라이카의 해결책

라이카는 렌즈 설계를 뜯어고치는 대신, 센서와 소프트웨어를 튜닝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M 렌즈의 컴팩트함을 포기할 수 없었으니까요.

  • 하드웨어 개선 (센서):
    센서 주변부에 위치한 마이크로 렌즈의 각도를 틀었습니다. 중앙부는 수직으로, 주변부는 중심을 향해 살짝 기울어지게 설계하여 비스듬히 들어오는 빛도 잘 받아내도록 만들었죠.
  • 소프트웨어 보정 (6-Bit 코딩):
    M 렌즈 후면을 보면 작은 흑백 바코드 같은 게 있습니다. 이게 바로 6-Bit 코딩인데 아래와 같은 핵심 역할을 합니다.
    • 바디가 렌즈 모델 인식 (예: 35mm f/1.4 ASPH II)
    • 해당 렌즈의 광학 특성 데이터 로드
    • 비네팅 및 컬러 캐스트 자동 보정

제 M10-R에 주미룩스 35mm를 장착하면, 바디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렌즈는 주변부 입사각이 가파르니 마젠타를 억제해야 해.”라고요. 덕분에 우리는 보정된 깨끗한 이미지를 봅니다.

📐 렌즈별 디지털 적응도

모든 M 렌즈가 디지털 센서와 똑같이 잘 맞는 건 아닙니다. 화각과 세대에 따라 차이가 분명합니다.

화각별 호환성

  • 광각 (21mm, 24mm, 28mm):
    디지털 센서와 가장 까다로운 조합입니다. 입사각이 극도로 비스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1990년대 이전 설계된 올드 광각 렌즈는 최신 바디에서도 주변부 색 틀어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표준 (35mm, 50mm):
    가장 안정적입니다. 입사각이 비교적 완만해서 센서와 트러블이 적습니다. 제 녹티룩스 50mm f/1.2가 M10-R에서 문제없이 작동하는 이유죠.
  • 망원 (75mm, 90mm, 135mm):
    디지털에서 오히려 화질이 좋아진 케이스입니다. 빛이 거의 수직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센서 효율이 극대화됩니다.

세대별 차이: 올드 vs 현행

다양한 세대의 라이카 M 렌즈 컬렉션. 1980년대 이전 구형 렌즈와 2000년대 이후 현행 렌즈가 섞여 있으며, 블랙 크롬과 실버 크롬 마감의 광각부터 망원까지 총 15개 렌즈가 흰 배경 위에 배치되어 있음
구형 렌즈(블랙 크롬 중심)와 현행 렌즈(실버 크롬 포함)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외형은 비슷해 보이지만, 코팅과 광학 설계는 디지털 센서 시대에 맞춰 꾸준히 진화해왔죠
  • 구형 렌즈 (1980년대 이전):
    코팅과 광학 설계가 필름 기준입니다. 디지털에서는 플레어가 잘 생기고 주변부 해상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결점’이 독특한 빈티지 룩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 현대 렌즈 (2000년대 이후):
    디지털 센서를 염두에 두고 설계됐습니다. 6-Bit 코딩이 내장되어 있고, 센서 반사를 억제하는 코팅이 적용되었으며, FLE(Floating Lens Element)로 근거리 화질까지 잡았습니다.

📊 해상도와 센서의 만남

M10-R의 4천만 화소, 그리고 M11 이후의 6천만 화소. 센서의 해상도는 렌즈를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회절 한계 (Diffraction Limit)

고화소로 갈수록 회절 현상에 민감해집니다. 픽셀이 너무 작아져서, 조리개를 조금만 조여도 빛이 회절되어 화질이 뿌옇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 필름 시대: f/16, f/22까지 조여도 OK.
  • 고화소 디지털: f/8 이상 조이면 회절로 해상도 저하 시작. f/11부터는 눈에 띄게 무뎌짐.

그래서 고화소 바디를 쓸 때는 무조건 조인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심도가 허락하는 한 f/5.6~f/8 정도에서 타협하는 것이 최상의 화질을 얻는 팁입니다.

🔮 미래를 위한 설계

라이카는 지금 만드는 렌즈가 20년, 30년 후의 바디에서도 쓰일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센서 기술의 진화

2025년 현재, 우리는 이미 BSI(이면조사형) 센서가 보편화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M11에서 도입된 이 기술은 배선층을 뒤로 보내 빛 수광률을 획기적으로 높였죠. 덕분에 올드 렌즈의 주변부 화질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떨까요?

  • 적층형 센서 (Stacked Sensor): 데이터 처리 속도의 혁신
  • 글로벌 셔터 (Global Shutter): 젤로 현상의 완전한 해결
  • 유기 센서 등 신소재 도입

라이카의 대응 전략

최근 출시되는 아포(APO) 렌즈나 신형 주미룩스들을 보면 미래에 대한 대비가 느껴집니다.

  • 극한의 해상력: 1억 화소 시대가 와도 대응 가능한 MTF 차트
  • 색수차 제로(Zero): 센서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보라색 프린징(Fringing) 원천 차단
  • FLE 메커니즘: 전 구간 균일한 화질 확보

제 주미룩스 35mm f/1.4 ASPH II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M10-R뿐 아니라, 훗날 나올 M12, M13에서도 최고 성능을 내도록 설계된 오버 스펙의 렌즈인 셈입니다.

🎯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빈티지 라이카 M 필름 카메라를 손으로 잡고 있는 모습. 브라스 마감이 벗겨진 오래된 카메라 바디와 렌즈가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며, 'LEICA TALK - VINTAGE LENSES' 텍스트가 함께 표시되어 있음
1954년 출시된 주미크론 50mm를 2024년 M11에 물려도 작동합니다. 할아버지가 쓰던 렌즈를 손자가 쓸 수 있는 시스템, 그게 M 렌즈입니다

1954년 생산된 주미크론 50mm를 2025년의 바디에 끼워도 사진이 찍힙니다. 70년의 시간 차이를 뛰어넘는 호환성, 이것이 라이카 시스템의 가장 큰 힘입니다.

물론 100% 완벽한 궁합은 아닐 수 있습니다. 주변부가 조금 흐릴 수도 있고, 색이 바랜 느낌이 들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오류’가 아니라 **’맛’**이라고 부릅니다.

기술은 변합니다. 센서는 더 예민해지고, 프로세서는 더 빨라집니다. 하지만 ‘빛을 다루는 방식’은 변하지 않습니다. 수동으로 초점을 맞추고, 조리개를 돌리며 빛을 조절하는 그 행위 자체는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과거의 렌즈로 현재를 기록하고, 현재의 렌즈로 미래를 기약하는 것. 라이카 유저들이 M 렌즈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영속성에 있는 게 아닐까요?

🎬 시즌 1을 마무리하며

5편에 걸쳐 라이카 M 렌즈의 역사와 기술을 살펴봤습니다.

  1. 엘마와 주미크론의 시작 – 광학 설계의 기초
  2. 주미룩스와 녹티룩스 – 극한의 밝기를 향한 도전
  3. ASPH 비구면 렌즈의 혁명 – 광학적 완벽을 향하여
  4. M 렌즈 디자인 철학 – 기능과 미학의 조화
  5. 그리고 오늘, 디지털과의 공존까지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라이카가 지켜온 건 단순히 광학 기술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진가와 도구의 관계, 과거와 현재의 연속성, 그리고 “평생 쓸 수 있는 도구”를 만든다는 철학이었죠.

제 카메라 가방 속 녹티룩스를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이 렌즈는 저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제 다음 세대의 누군가에게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줄 것이라고요.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물건을 쓴다는 것, 참 멋진 일입니다.

🔮 다음 시즌 예고: 시즌 2 [화각별 분석]

시즌 1에서 이론과 역사를 다뤘다면, 시즌 2는 철저한 실전입니다.

28mm, 35mm, 50mm, 75mm, 90mm… 각 화각은 어떤 특성이 있을까요? 어떤 상황에 어울릴까요? 첫 M 렌즈로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제가 주력으로 쓰는 35mm와 50mm는 뼈를 때리는(?) 실사용기를, 다른 화각들은 공식 자료와 커뮤니티 리뷰를 종합해서 정리하겠습니다.

시즌 2 구성 (총 8편):

  1. 28mm의 세계 – 넓은 시야와 왜곡의 균형
  2. 35mm 완전 분석 – 스냅의 정석 (주미크론 vs 주미룩스)
  3. 50mm 깊이 파기 – 표준 화각의 진실 (녹티룩스 실사용기)
  4. 75mm와 90mm – 중망원의 매력
  5. 21mm 이하 초광각 – 극한의 화각 주미크론 vs 주미룩스 – f/2.0과 f/1.4의 선택
  6. APO 렌즈의 세계 – 광학적 완벽의 의미
  7. 첫 M 렌즈 선택 가이드 – 나에게 맞는 화각 찾기

곧 시즌 2로 찾아뵙겠습니다.

📚 시리즈 전체 보기

시즌 1: 역사와 기술 (총 5편)

1편: 엘마와 주미크론의 시작

2편: 주미룩스와 녹티룩스, 극한의 밝기를 향한 도전

3편: ASPH 렌즈의 혁명, 광학적 완벽을 향하여

4편: M 렌즈 디자인 철학, 기능과 미학의 조화

✅ 5편: 디지털 시대의 M 렌즈, 과거와 현재의 연결 (현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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