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전시회 후기] 퓰리처상 사진전 ‘Shooting the Pulitzer’ 방문기 | 역사의 숨결을 마주하다
안녕하세요, 사진과 감성을 기록하는 TACO입니다.
사진 한 장이 때로는 천 마디 말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준다고 믿습니다. 셔터가 눌리는 찰나의 순간은 그 자체로 기억이 되고, 때로는 시대를 대변하는 증언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도사진상, ‘퓰리처상(Pulitzer Prize)’ 수상작들이 대구에서 전시된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설렘 그 자체였습니다.
2025년 4월, 10년 만에 다시 대구에 찾아온 ‘Shooting the Pulitzer’ 퓰리처상 사진전은 동성로 한복판에 위치한 뮤씨엄 대구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전시를 와이프와 함께 방문했고, 오랜만에 ’눈으로, 가슴으로’만 보는 사진 감상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전시 정보: Shooting the Pulitzer

- 전시 기간: 2025년 4월 25일(금) ~ 10월 12일(일)
- 운영 시간: (평일) 12:00~21:00 / (주말·공휴일) 11:00~21:00
- 전시 장소: 뮤씨엄 대구점 (대구 동성로, 스파크랜드 3층)
- 입장료: 성인 20,000원 / 청소년·어린이 15,000원
- 주차 안내: 스파크랜드 지하 주차장 2시간 무료
- 사전 예매: 네이버, 인터파크 등 온라인 예매 가능
1. 전시의 문을 열며: 사진으로 역사를 읽다

뮤씨엄 대구는 도심 속에서도 꽤 고요한 분위기를 가진 곳입니다. 동성로의 활기를 뒤로하고, 3층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타임캡슐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입장 전에 안내문을 통해 알게 된 **전 구역 사진·영상 촬영 금지**라는 규정은 아쉽게 다가왔지만, 결과적으로는 오롯이 사진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결정이기도 했습니다.
요즘처럼 모든 걸 손안의 화면으로 기록하는 시대에, 오직 눈과 기억에만 남는 장면들이라는 점은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더군요. 프레임 안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경험이었죠.
💡 여기서 잠깐! 퓰리처상(Pulitzer Prize)이란?
퓰리처상은 미국 언론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상으로, 1917년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의 유언에 따라 제정되었습니다.
저널리즘, 문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공적을 세운 개인 또는 단체에게 수여되며, 특히 보도사진 부문은 인류의 역사 속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사진에 주어집니다. 다시 말해, 시대의 진실을 응시하고 기록해낸 사진들에게 주어지는 ‘역사적 인증서’이자, 인간성과 정의를 향한 경외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전시 구성: 시대별로 읽는 세계의 단면들
이번 전시는 연대기 순으로 큐레이션 되어 있었습니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인류가 겪어온 고통·투쟁·변화를 맥락적으로 조명한 방식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 1950~60년대 | 전쟁의 상흔: 흑백사진으로 전해지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의 참상은 컬러가 없어도 오히려 더 생생하고 잔혹했습니다. 이 시기의 사진은 ‘전쟁’이라는 단어가 단지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수많은 이름 모를 개인들의 비극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 1970~80년대 | 인권과 저항의 목소리: 미국의 민권운동, 여성 해방 운동, 군부독재 반대 시위 등에서 포착된 장면들은 사진의 사회적 역할을 분명히 보여줬습니다. 변화는 늘 거리에서 시작되고, 셔터는 그 거리의 증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1990~2000년대 | 분쟁과 공존의 시대: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갈등도 복잡해진 시기입니다. 발칸반도,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벌어진 국지 전쟁과 내전의 참상은, ‘멀리 있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평화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거울이었습니다.
- 2010년대 이후 | 지금, 우리 시대의 얼굴: 코로나 팬데믹, 기후 재난, 우크라이나 전쟁, 총기 난사, 이민자 문제 등은 더 이상 뉴스 속 사건이 아닌, 우리 일상의 연장이 되었습니다. 특히 2019년, 한국인 최초 수상자 김경훈 기자의 로이터 통신 보도사진은 익숙한 배경과 함께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의 온도’를 깊게 체감하게 했습니다.
3. 기억에 남은 퓰리처상 수상작들 | 한 장의 사진, 그 이상의 진실
- 닉 우트 – 네이팜탄 소녀 (1973) 👉 이미지 보기 (위키미디어)
베트남 전장에서 네이팜탄을 피해 맨발로 뛰는 소녀의 사진은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유명하지만, 실제 크기의 원본을 눈앞에서 보았을 때의 충격은 또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사진 한 장이 전쟁을 바꾸고, 세계 여론을 뒤흔든다는 것을 증명한 대표적 사례이기도 했습니다.
- 케빈 카터 – 독수리와 소녀 (1994) 👉 이미지 보기 (위키미디어)
기아에 시달리던 수단의 한 마을에서 굶주린 소녀 뒤를 맴도는 독수리. 사진 자체보다 더 논쟁적이었던 건 이 사진을 찍고 떠나야 했던 사진가의 내면이었습니다. 셔터는 진실을 담는 도구인 동시에, 때론 무력감과 자기 혐오의 기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가의 존재론적 고민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 조 로젠탈 – 이오지마 성조기 게양 (1945) 👉 이미지 보기 (위키미디어)
미국 해병대원들이 성조기를 게양하는 이 사진은 애국심의 상징으로 회자되었지만, 이후 연출 논란 등 다양한 시각이 제기된 작품입니다. 보도사진의 ‘객관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개념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프레임 밖에 놓인 현실에 대한 인식도 함께 요구합니다.
- 네이선 파인 – 베이브 루스의 마지막 인사 (1949) 👉 이미지 보기 (위키미디어)
폐암 투병 중 마지막으로 홈플레이트에 선 전설의 홈런왕이 영원한 3번 유니폼을 입은 채 묵묵히 등을 돌린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남았습니다. 셔터는 은퇴식이 아닌, 한 시대의 퇴장을 담았습니다. 이 사진은 스포츠 보도사진이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영웅의 이별’도 역사가 된다는 걸 보여주었죠.
4. 전시장을 나서며: 사진, 다시 인간을 생각하게 하다

전시를 마친 후 와이프와 함께 뮤씨엄의 아트숍을 둘러보며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진 한 장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우리는 어떤 장면을 남길 수 있을지에 대한 대화였습니다.
이번 대구 퓰리처상 사진전은 역사 속을 걸으며,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묻는 질문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2025년 10월 12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 사진에 관심이 있는 분은 물론, 우리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모두에게 꼭 한번 추천하고 싶은 전시입니다.
그 장면들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보시길 바랍니다.
그건 단지 그저 ‘사진’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의 얼굴일지도 모릅니다.
이상으로 긴 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을 사랑하는 당신의 하루도, 오늘 이 장면들처럼 오래 기억되길 바랍니다.
다음 기록에서도 다시 인사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