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 M10-R로 찍은 사진, 고창 청보리밭에서.
| |

📸 나의 사진 여정 2편: 후지필름, 리코 GR, 그리고 라이카의 시작

카메라 · 오너의 이야기 · Leica M

나의 사진 여정 2편:
후지필름, 리코 GR,
그리고 라이카의 시작

캐논을 떠나기로 결심하기까지, 그리고 M9-P를 처음 손에 쥐던 날

TACO 2025. 06 카메라 Leica M · 오너의 이야기

이 글에 대해

  • 캐논 5D Mark III 이후, 새로운 방향을 찾던 시기의 기록
  • 후지필름 X-Pro1·X100T — 짧았지만 결정적이었던 인연
  • 리코 GR2 — 2017년부터 지금까지 가장 오래 함께하는 카메라
  • 2019년, 캐논 장비 전부 처분 후 라이카 M9-P 입문
  • 라이카 Q — AF 라이카를 약 2년간 경험한 이유
  • M10-R로 정착하기까지의 흐름
  • 1편: 니콘 쿨픽스부터 캐논 5D Mark III까지

캐논 5D Mark III와 10년을 함께했습니다.

결과물에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뛰어다니는 아이를 쫓고, 해외여행을 기록하고, 일상을 담는 데 이 카메라는 사실상 완벽했습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어느 시점부터 카메라를 들고 나가고 싶다는 욕구가 예전만큼 크지 않았습니다. 찍는 행위 자체에서 뭔가가 빠진 느낌. 처음엔 번아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감각이 저를 다른 쪽으로 이끌었습니다. 후지필름이 먼저였고, 리코 GR이 그다음이었습니다. 그리고 2019년, 라이카 M9-P로 넘어갔습니다.

📷 후지필름 — 짧았지만 결정적이었던 인연

5D Mark III를 메인으로 쓰던 시기, 짧은 기간 후지필름을 경험했습니다. X-Pro1과 X100T였습니다.

캐논과는 접근 방식 자체가 달랐습니다. ISO, 셔터스피드, 조리개를 각각의 다이얼로 직접 조작하는 방식. 노출을 세팅하고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기 전에 이미 손으로 빛을 읽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후지필름 특유의 필름 시뮬레이션 — Velvia와 Classic Chrome이 만드는 색감은 캐논 결과물과 분명히 달랐습니다.

특히 X100T의 35mm 환산 고정 단렌즈 조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줌이 없다는 제약이 오히려 찍는 방식을 단순하게 만들었습니다. 발로 구도를 잡고, 그 범위 안에서 결정하는 것. ‘일상 스냅’이라는 영역이 따로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오래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때 알게 된 것 — 카메라가 결과물을 넘어 ‘찍는 행위 자체’를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 — 은 이후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습니다.

📷 리코 GR2 — 지금도 주머니 안에 있는 카메라

2017년, 리코 GR2를 신품으로 구입했습니다.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선택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항상 들고 다닐 수 있는 카메라가 필요했고, APS-C 센서에 28mm 단렌즈를 주머니 크기 안에 담은 카메라는 GR 시리즈밖에 없었습니다. 콤팩트 카메라에서 흔히 타협하는 화질 — 그 타협이 GR에는 없었습니다.

여행 때 1순위로 챙기는 카메라입니다. 바르샤바, 프라하, 루체른을 걸을 때도 GR2가 먼저 손에 잡혔습니다. 큰 카메라를 꺼내기 망설여지는 순간, 카페에서 커피를 기다리는 잠깐, 동네 골목을 그냥 걸을 때 — GR2는 그 모든 상황에서 부담 없이 나왔습니다.

M10-R을 메인으로 쓰는 지금도 역할이 겹치지 않습니다. M10-R은 작정하고 찍으러 나갈 때, GR2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은 날 주머니에서 나옵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가방 안에 들어 있습니다.

TACO 생각

GR2를 서브 카메라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라이카 M과 역할이 다른 카메라입니다. 주머니에 들어가면서 APS-C 화질을 내는 카메라 — 이 조합을 대체할 수 있는 선택지가 지금도 많지 않습니다. GR IV가 나온 지금도 GR2를 계속 쓰는 이유입니다.

📷 라이카 M9-P — 2019년, 캐논을 전부 팔고 나서

2019년, 캐논 장비를 전부 처분하고 라이카 M9-P를 샀습니다.

충동적인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후지필름에서 찍는 방식의 변화를 경험했고, GR2로 크기와 화질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라이카 M 시스템은 그 방향의 끝이었고, M9-P는 그 입구였습니다.

처음 손에 쥐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무게와 질감이었습니다. 황동 바디의 밀도감. 그다음은 뷰파인더였습니다. 광학 레인지파인더로 세상을 보는 방식은 DSLR 뷰파인더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더 밝고, 더 넓고, 피사체 바깥이 보입니다. 거리 측거 패치가 겹쳐지면서 초점이 맞는 방식도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동 초점은 처음엔 낯설었습니다. AF에 익숙한 상태에서 포커스 패치를 손으로 맞추는 과정. 2주쯤 지나서 익숙해졌고, 3개월이 지났을 때 이 방식으로만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셔터를 누르기 전에 더 오래 생각하게 됐고, 그만큼 찍은 사진 한 장에 더 오래 머물게 됐습니다.

M9-P의 CCD 센서가 만드는 색감은 CMOS와 다릅니다. 필름 사진의 계조에 가까운 중간 톤, 하이라이트가 서서히 날아가는 방식. 이게 좋아서 지금도 M9-P를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그 색감이 좋았습니다. 결국 센서 부식 문제로 M10-R로 넘어갔지만, M9-P를 쓰면서 배운 M 시스템의 기본기는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 라이카 Q — AF 라이카를 경험한 이유

M9-P 이후, 라이카 Q 실버 모델을 약 1년 9개월 썼습니다. 2022년부터입니다.

M 시스템에서 AF가 필요한 상황이 생겼던 건 사실입니다. 움직이는 피사체,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순간들. M9-P의 수동 초점이 모든 상황을 커버하지는 않았습니다. 라이카 Q는 그 빈자리를 채우는 선택이었습니다.

풀프레임 센서에 고정 28mm Summilux f/1.7 렌즈. 빠르고 정확한 AF. M 시스템의 묵직한 감성과는 다른, 더 즉각적이고 가벼운 라이카 경험이었습니다. 결과물의 밀도나 색감에서 라이카답다는 느낌은 유지됐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다시 M10-R로 돌아왔습니다. 편리한 카메라가 나쁜 게 아니라, 저는 M 시스템의 불편함을 즐기는 쪽이었습니다. 라이카 Q를 쓰는 동안 그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TACO 생각

라이카 Q는 좋은 카메라입니다. M 시스템의 진입 장벽이 부담스럽다면, Q가 훨씬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AF 되고, 화질 좋고, 크기도 적당합니다. 저에게는 맞지 않았던 게 카메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수동 초점과 레인지파인더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겁니다.

📷 라이카 M10-R — 지금 이 카메라

현재 메인 카메라는 라이카 M10-R입니다.

M9-P에서 M10-R로 넘어오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센서의 성격입니다. M9-P의 CCD가 색감으로 기억된다면, M10-R은 묘사력으로 남습니다. 4,000만 화소 CMOS 센서는 렌즈의 해상력을 완전히 받아냅니다. 주미룩스 35mm f/1.4나 녹티룩스 50mm f/1.2를 달았을 때 나오는 결과물은, 다른 시스템에서는 재현하기 어렵습니다.

조작계는 M9-P와 거의 동일합니다. ISO 다이얼이 상단으로 올라왔고, 바디가 조금 얇아졌습니다. 그래서 넘어오는 데 적응 시간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M 시스템 안에서의 업그레이드였습니다.

워니는 이제 대학생이 됐고, 예전처럼 가족을 기록하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M10-R로는 제가 보는 세상을 찍습니다. 빛, 거리, 사람, 골목. 찍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찍고 싶어서 나가는 사진입니다. 그게 지금 저의 사진입니다.

TACO 생각

20년을 돌아보면, 저는 항상 ‘찍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는가’를 기준으로 카메라를 바꿔왔습니다. 스펙이 부족해서 바꾼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M10-R은 지금도 찍고 싶게 만드는 카메라입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 다음 편에서

3편부터는 라이카 브랜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오스카 바르낙이 설계한 우어라이카에서 시작해, 에른스트 라이츠의 결단이 어떻게 사진의 역사를 바꿨는지 — 그 서막을 정리했습니다.

카메라를 바꾼 게 아니었습니다.
사진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 겁니다.

자주 묻는 것들

Q. 캐논 DSLR에서 바로 라이카 M으로 넘어가는 게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다만 수동 초점과 레인지파인더 방식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후지필름과 GR을 거쳐서 갔는데, 결과적으로 그 순서가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편리한 카메라로 충분히 찍어봤다’는 경험이 먼저 있어야 M 시스템의 불편함을 즐기는 게 가능한 것 같습니다.

Q. M9-P와 M10-R, 지금 시점에서 어떤 걸 선택하는 게 나을까요?

목적에 따라 다릅니다. CCD 색감을 원한다면 지금도 M9-P가 정답입니다. 단, 센서 부식 이력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M10-R은 해상력과 고감도 성능에서 현대적인 기준을 충족합니다. 렌즈 성능을 최대한 뽑아내고 싶다면 M10-R 쪽입니다. 두 카메라를 모두 써본 입장에서 드리는 이야기입니다.

Q. 라이카 Q와 라이카 M, 어떤 게 입문에 더 적합한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라이카를 처음 경험한다면 Q 쪽이 훨씬 진입하기 쉽습니다. AF 되고, 조작도 직관적이고, 결과물도 라이카답습니다. M 시스템은 수동 초점과 레인지파인더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음에 가는 게 후회가 적습니다. 저는 그 순서를 반대로 갔다가 결국 M으로 돌아왔습니다.

Similar Posts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