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창업주 도요다 기이치로의 초상화와 그가 설립한 토요타 자동차 회사를 보여주는 분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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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타 브랜드 스토리 2편] 자동차에 뛰어든 몽상가, 도요다 기이치로

안녕하세요, 사진과 감성을 기록하는 TACO입니다.

지난주, 우리는 토요타 브랜드 스토리의 첫 번째 이야기로 천재 발명가 도요다 사키치를 만났습니다. 어머니를 향한 효심에서 시작된 그의 발명과 ‘자동화(Jidoka)’ 철학이 어떻게 토요타의 위대한 씨앗이 되었는지 살펴보았죠.

오늘은 그 씨앗을 물려받아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자동차’라는 거대한 나무를 심은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郎, 1894~1952). 그는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라,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일본의 기술 독립을 꿈꾸던 위대한 몽상가였습니다.

“일본인의 손으로 일본의 차를 만든다” – 1920년대, 서구 열강들이 기술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이런 꿈을 품는다는 것은 과연 현실적이었을까요? 그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 1. 아버지의 유산 위에 새워진 새로운 꿈

1.1 천재 발명가의 아들로 태어나다

박물관에 전시된 직기 제작소의 모습. 도요다 사키치처럼 보이는 마네킹이 기계 직기 앞에서 연구하는 모습이다.
기이치로가 매일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 망치 소리와 기계 소음 속에서 그의 꿈은 무르익었습니다.

1894년 6월 11일, 도요다 기이치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 사키치는 27세의 청년 발명가였습니다. 기이치로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베틀 앞에서 밤낮으로 연구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망치질 소리, 기계 부품들이 돌아가는 소음,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끊임없는 중얼거림 – “어떻게 하면 더 좋게 만들 수 있을까?”

사키치가 ‘자동화’의 개념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기이치로에게, 혁신은 거창한 이론이 아닌 일상이었습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고, 끊임없이 개선하는 –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사고 과정이 되었습니다.

1.2 도쿄제국대학에서 만난 서구 기술

1917년, 23세의 기이치로는 도쿄제국대학(현 도쿄대학) 공학부 기계과를 졸업했습니다. 당시 일본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그였지만, 정작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교실에서 배운 이론이 아니라 서구에서 들려오는 ‘자동차’라는 신기한 기계에 대한 소식이었습니다.

1908년 출시된 포드 모델 T가 대중화되는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
기이치로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바로 그 자동차, 포드 모델 T. 이 사진 한 장이 그가 꿈꾸던 새로운 시대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1908년 포드 모델 T의 등장으로 자동차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는 소식, 미국에서는 하루에 수천 대의 자동차가 생산된다는 이야기들이 기이치로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직기로 여성들의 노동을 덜어드렸듯이, 나는 자동차로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1.3 운명을 바꾼 서구 견학 (1921~1922)

1921년, 27세의 기이치로는 부친의 배려로 미국과 유럽 견학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여행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1920년대 포드 공장 생산 라인의 모습.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자동차가 조립되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작업하고 있다.
기이치로가 충격을 받았던 포드 공장 생산 라인. 이 거대한 규모는 일본의 현실과 비교되며 그에게 깊은 사명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미국 포드 공장에서의 충격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포드 루즈 공장을 방문한 기이치로는 말 그대로 충격에 빠졌습니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흘러가는 자동차들, 분업화된 작업자들, 그리고 하루 1만 대라는 경이로운 생산량.

“이것이 진정한 대량생산이구나. 일본도 언젠가는 이런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기이치로의 시선은 단순히 생산량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포드 시스템의 한계도 냉철하게 관찰했습니다.

포드 시스템의 그림자

  • 획일화된 제품 (모델 T는 “검은색만 가능”)
  • 인간을 기계의 부품으로 취급하는 비인간적 시스템
  • 품질보다 속도를 우선시하는 철학

기이치로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리는 미국을 따라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의 ‘자동화’ 철학처럼, 기계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 2. 무모한 도전: 자동차 사업 진출

2.1 1929년, 운명의 결정

1929년, 아버지 사키치가 영국 플래트 브라더스에 직기 특허를 판매하여 얻은 10만 파운드(현재 가치 약 100억 원). 사키치는 이 거액을 아들에게 건네며 말했습니다.

“기이치로야, 직기의 시대는 끝나간다. 이제 자동차의 시대가 올 것이다. 이 돈으로 일본의 자동차를 만들어라.”

하지만 당시 일본의 자동차 산업 현실은 절망적이었습니다:

  • 기술 부재: 엔진, 변속기 등 핵심 부품 제조 기술 전무
  • 소재 산업 미약: 고품질 강철 생산 불가능
  • 부품 공급망 부재: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협력업체가 거의 없음
  • 시장의 회의적 시선: “일본인이 무슨 자동차를 만들겠는가?”

2.2 분해와 분석: 리버스 엔지니어링의 시작

자동차를 분해하며 구조를 연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목재 자동차 모형 전시물
이것이 바로 기이치로의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라는 철학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겉모습이 아닌 뼈대와 속살을 들여다보며 자동차의 본질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기이치로는 체계적인 접근을 택했습니다. 1930년, 도요다 자동직기 제작소 내에 자동차부를 신설하고, 미국에서 쉐보레와 포드 자동차를 구입해 완전히 분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분해 작업의 철학 기이치로의 분해 작업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었습니다. 각 부품의 기능을 이해하고, 왜 그런 형태와 재료를 사용했는지 분석하며,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고민했습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하지만 맹목적 모방은 창조의 적이다.”

2.3 첫 번째 시련: 기술적 한계의 벽

1933년, 첫 번째 엔진 시제품을 만들었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 진동이 심해 10분도 지속 운전 불가능
  • 연료 소비량이 미국 차의 2배
  • 부품들이 자주 파손되어 실용성 부족

하지만 기이치로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자동화’ 철학을 떠올리며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5 Whys 기법의 도입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기 위한 5 Whys 방법론의 다이어그램. 문제부터 5단계의 '왜?'를 거쳐 최종 해결책에 도달하는 깔때기 모양의 그림이다.
도요다 기이치로가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사용했던 ‘5 Whys’ 방법론. 이처럼 토요타의 철학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체계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됩니다.
  • 왜 엔진이 진동하는가? → 부품의 정밀도가 부족하다
  • 왜 정밀도가 부족한가? → 가공 기술이 떨어진다
  • 왜 가공 기술이 떨어지는가? → 적절한 공구와 측정 장비가 없다
  • 왜 공구가 없는가? → 일본에 정밀 공구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다
  • 왜 정밀 공구 산업이 없는가? → 수요와 기술 축적이 부족하다

이렇게 근본 원인을 파악한 기이치로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 전체를 육성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 3. 첫 결실: A1형과 G1형의 탄생

3.1 1935년, 기적의 순간

5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1935년 5월, 드디어 기이치로의 첫 작품인 A1형 승용차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935년, 토요타의 첫 자동차인 A1형 승용차 시제품이 공개되는 흑백 사진. 공장 직원들이 시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수많은 실패 끝에 탄생한 A1형 승용차. 5년간의 고군분투가 이 사진 한 장에 담겨 있습니다.

A1형의 혁신적 특징들:

  • 6기통 3.4L 엔진으로 최고속도 100km/h 달성
  • 당시 일본차로는 놀라운 승차감과 정숙성 구현
  • 크라이슬러 에어플로우의 영향을 받은 유선형 디자인
  • 일본 도로 사정에 맞춘 서스펜션 튜닝

하지만 A1형은 상업적으로는 실패작이었습니다. 가격이 너무 비싸 일반인들이 구매하기 어려웠고, 아직 품질면에서도 미국차에 뒤처졌습니다.

3.2 현실적 선택: G1형 트럭의 성공

기이치로는 냉정하게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승용차보다는 실용성이 중요한 트럭 시장에서 먼저 성공을 거둬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1936년 출시된 G1형 트럭은 A1형과는 달리 상업적 성공을 거뒀습니다:

1936년에 출시된 토요타 G1형 트럭의 녹색 실물 사진
이 트럭이 바로 토요타에 첫 번째 상업적 성공을 안겨준 G1형입니다. 이 실용적인 트럭이 있었기에 기이치로는 승용차 개발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 1.5톤 적재량으로 당시 일본 시장 수요에 적합
  • 미국 트럭 대비 30% 저렴한 가격
  • 일본의 험한 도로에 최적화된 내구성
  • 정비가 쉬워 운영비 절약 가능

G1형의 성공은 기이치로에게 자신감과 더불어 중요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기술적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진짜 필요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3.3 양산 체제 구축: 고로마치 공장

G1형의 성공에 힘입어 기이치로는 1938년 고로마치에 본격적인 자동차 전용 공장을 건설했습니다. 이 공장에서 그는 아버지의 ‘자동화’ 철학을 자동차 생산에 본격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로마치 공장의 혁신

  • 불량품 발생 시 즉시 라인 정지하는 시스템
  • 작업자가 직접 품질을 체크하고 개선안을 제시하는 문화
  • 재고를 최소화하는 JIT(Just In Time) 생산의 초기 형태

🧠 4. 철학의 구현: 토요타 생산방식의 기초

4.1 낭비 제거의 철학

기이치로가 포드 공장에서 목격한 것은 놀라운 생산성이었지만, 동시에 엄청난 낭비이기도 했습니다. 거대한 창고에 쌓인 부품들, 불량품을 골라내는 별도 부서, 단조로운 작업에 지쳐가는 노동자들.

“생산성과 효율성이 반드시 같은 말은 아니다. 진정한 효율성은 낭비를 제거하는 데서 나온다.”

기이치로는 일곱 가지 낭비를 정의했습니다:

  1. 과잉 생산의 낭비: 필요 이상 만드는 것
  2. 대기의 낭비: 다음 공정을 기다리는 시간
  3. 운반의 낭비: 불필요한 이동과 운반
  4. 가공의 낭비: 부가가치 없는 작업
  5. 재고의 낭비: 필요 이상의 재고 보유
  6. 동작의 낭비: 비효율적인 작업 동선
  7. 불량품의 낭비: 결함으로 인한 재작업

4.2 ‘현장주의’의 정착

아버지 사키치가 어머니의 베틀 앞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듯이, 기이치로 역시 현장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그는 매일 공장을 돌아다니며 작업자들과 대화했습니다.

“경영자가 사무실에만 앉아 있으면 현실을 알 수 없다. 진짜 문제는 현장에 있고, 진짜 해답도 현장에 있다.”

겐치 겐부츠(現地現物): 현장에서 현물을 보라 이는 기이치로가 정립한 토요타의 핵심 원칙 중 하나입니다. 보고서나 데이터로는 알 수 없는 진실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라는 뜻입니다.

4.3 인간 중심의 자동화

기이치로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가장 소중한 유산은 ‘기계는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철학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자동화와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지도카(Jidoka)의 발전 아버지의 ‘자동화’를 계승하여 자동차 생산에 적용:

  • 품질 이상 발견 시 즉시 라인 정지
  • 문제 해결 후 재가동
  • 불량품의 후공정 유입 차단
  • 작업자의 창의성과 책임감 중시

🏭 5. 토요타 자동차 공업의 설립

1937년 토요타 자동차 공업이 설립되던 당시의 흑백 사진. 회사 건물과 G1형 트럭이 보인다.
이 사진은 1937년 토요타 자동차 공업이 설립되던 역사적인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豊田’에서 ‘TOYOTA’로 바뀐 이름처럼, 세계를 향한 거대한 꿈이 시작된 것입니다.

5.1 1937년, 역사적인 독립

1937년 8월 28일, 기이치로는 마침내 부친의 도요다 자동직기 제작소에서 분리하여 토요타 자동차 공업 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때 흥미로운 변화가 있었는데, 바로 사명을 ‘Toyoda’에서 ‘Toyota’로 바꾼 것입니다.

Toyota 브랜드명의 탄생 배경

  • 발음의 편의성: ‘Toyota’가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쉬움
  • 서예적 의미: 일본어로 ‘トヨタ’는 8획으로 길한 숫자
  • 개방성의 상징: 개인의 성(姓)을 벗어나 글로벌 브랜드로 발전하겠다는 의지
  • 새로운 시작: 직기 회사가 아닌 자동차 회사로의 명확한 정체성

5.2 전시 체제와의 딜레마

하지만 토요타 자동차가 설립될 무렵 일본은 전쟁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었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고,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기이치로의 자동차 사업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전시 경제의 압박

  • 민간 자동차 생산 금지
  • 군용 트럭 생산 강요
  • 원자재 배급제로 인한 생산 차질
  • 숙련 노동자들의 징병

기이치로는 깊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전쟁에 협력하지 않으면 회사가 존속할 수 없지만, 전쟁에 협력하는 것은 그의 철학에 맞지 않았습니다.

5.3 전후 재건과 새로운 도전

1945년 일본의 패전 후, 기이치로는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습니다. 전쟁으로 파괴된 공장, 극심한 인플레이션, 그리고 무엇보다 미군정의 재벌 해체 정책.

위기를 기회로 하지만 기이치로는 이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봤습니다:

  • 전후 복구 수요로 인한 트럭 시장 확대
  • 미국의 민주적 경영 기법 도입 기회
  • 평화적 목적의 자동차 생산 재개

1947년, 52세의 기이치로는 토요펫 SA형을 출시하며 전후 재건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이는 전쟁 전 A1형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화된 승용차였습니다.

💭 6. TACO가 바라본 기이치로의 진짜 의미

6.1 몽상가인가, 현실주의자인가?

기이치로를 흔히 ‘몽상가’라고 부르지만, 제가 그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느낀 것은 그가 얼마나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는가 하는 점입니다.

젊은 시절 도요다 기이치로의 공식 초상화. 그가 몽상가이자 현실주의자였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몽상가이면서도 현실을 놓지 않았던 도요다 기이치로의 젊은 날. 이 사진은 그의 복합적인 내면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M340i의 정교한 엔진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해봅니다. 이 독일 엔진의 품질과 내구성 뒤에는 100년 넘는 자동차 기술의 축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토요타는 불과 20-30년 만에 이런 품질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그 비결이 바로 기이치로의 ‘현실적 몽상’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실적 몽상의 세 가지 원칙

  1. 큰 꿈, 작은 시작: 자동차 왕국을 꿈꾸지만 트럭부터 시작
  2. 완벽한 계획보다 빠른 실행: 불완전해도 시작하고 개선해나가기
  3. 외부 학습, 내부 혁신: 서구 기술을 배우되 일본적 개선 추가

6.2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기이치로의 자동차 개발 과정은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A1형의 상업적 실패, 초기 엔진의 기술적 결함, 전쟁으로 인한 사업 방향 변경 등. 하지만 그는 실패할 때마다 더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성공의 재료다. 실패에서 배운 교훈을 다음 도전에 활용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이런 마인드셋이 오늘날 토요타의 ‘카이젠’ 문화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완벽을 추구하되 완벽을 기다리지 않는, 그리고 실패를 통해 배우는 조직 문화 말입니다.

6.3 기술자의 휴머니즘

기이치로가 추구한 것은 단순한 기술적 성취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사키치가 어머니의 고생을 덜어주려 했던 것처럼, 기이치로 역시 자동차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려 했습니다.

현재 토요타가 전 세계적으로 신뢰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화려한 성능이나 최첨단 기술보다는 ‘안전하고 오래가며 믿을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려는 철학. 이는 기이치로가 심어놓은 ‘기술의 휴머니즘’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 마무리: 씨앗에서 새싹으로

도요다 기이치로(1894~1952). 58년의 생애 동안 그는 아무것도 없던 일본에 자동차 산업이라는 거대한 새싹을 틔웠습니다. 아버지 사키치가 심어놓은 ‘혁신과 개선’의 씨앗을 받아, 그는 ‘자동차’라는 새로운 토양에서 꽃피웠습니다.

그가 정립한 ‘낭비 제거’, ‘현장주의’, ‘지속적 개선’의 철학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완의 교향곡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교향곡을 완성시킬 또 다른 천재가 이미 무대 뒤에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기이치로가 꿈꾸던 ‘완벽한 생산 시스템’을 현실로 만든 남자, 바로 타이이치 오노의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낭비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제조업의 역사를 바꾼 그의 혁명적 사고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낭비를 없애는 것이 곧 이익을 만드는 것이다” – 오노의 이 한 마디가 어떻게 토요타를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로 만들었는지, 그 비밀을 함께 풀어보시죠.


다음 편 예고: 🏭 [토요타 브랜드 스토리 3편] 낭비와의 전쟁, 타이이치 오노

TACO와 함께하는 토요타 브랜드 스토리, 다음 편에서 만나요!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참고문헌:

  • 제프리 라이커, 『토요타 웨이』(The Toyota Way)
  • 타이이치 오노, 『토요타 생산방식』
  • 와다 가즈오, 『토요타 경영사』
  • 도요다 기이치로 전기편찬위원회, 『도요다 기이치로 전』
  • Toyota Motor Corporation, “75 Years of Toyota”
  • Harvard Business Review, “The Toyota Production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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