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위에 놓인 실버 색상의 라이카 M10-R 카메라. 카메라에는 50mm 녹티룩스 복각 렌즈가 마운트되어 있고, 그 옆에는 35mm 주미룩스 렌즈가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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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M 렌즈, 그 압도적인 광학의 마법 [라이카 특별 시리즈 6편]

안녕하세요. 차가운 금속과 따뜻한 렌즈, 그 속의 이야기들을 사랑하는 TACO입니다.

지난 5편(보러가기)에서는 라이카가 필름의 시대를 지나 디지털이라는 거친 파도를 어떻게 헤쳐나왔는지, 그 고뇌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라이카의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라이카라는 이름에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 그 핵심에는 바로 라이카 M 렌즈가 있기 때문이죠.

카메라 바디는 빛을 기록하는 도구일 뿐, 사진의 영혼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렌즈입니다. 라이카 렌즈는 왜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사람들은 왜 그 작은 유리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요?

이번 6편에서는 그 비밀을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라이카 렌즈의 이름에 담긴 의미부터, 제가 직접 경험했던 35mm 주미크론(4세대)과의 5년, 그리고 현재 저의 눈이 되어주고 있는 35mm 주미룩스50mm 녹티룩스(복각)에 이르기까지.

저의 개인적인 여정을 통해, 라이카 M 렌즈가 선사하는 압도적인 광학의 마법을 함께 느껴보시죠.

가을 낙엽이 흩어진 길을 따라 뒷모습의 한 사람이 걸어가고 있으며, 길가에는 메뉴판이 놓여 있고, 멀리 다른 사람들이 걷고 있는 풍경.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가운데, 주변의 나무들은 붉고 노란 잎으로 물들어 가을 분위기를 자아낸다.
찬란한 가을 햇살 아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여정. 그 길 위에서 라이카 M 렌즈는 때로는 눈부신 현실을, 때로는 꿈결같은 환상을 선사했습니다. 함께 그 마법 같은 순간 속으로 떠나보실까요?

✍️ 1. 렌즈 이름에 담긴 비밀: 빛을 다스리는 언어

라이카 렌즈의 세계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은 누구나 그 독특한 이름 앞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주미크론, 주미룩스, 녹티룩스…

마치 고대의 주문처럼 들리는 이 이름들에는 사실 라이카의 철학과 기술력이 담긴 ‘빛의 언어’가 숨어 있습니다. 이 이름들은 렌즈의 ‘최대 개방 조리개 값(F값)’을 나타내는 라이카의 고유한 작명법이죠.

  • Noctilux (녹티룩스, F0.95~F1.2):
    ‘밤(Noctis)’과 ’빛(Lux)’의 합성어입니다. 말 그대로 밤을 낮처럼 밝히는, 상상을 초월하는 밝기를 자랑하는 라이카의 플래그십 렌즈죠. 제가 사용하는 50mm f/1.2 녹티룩스 복각 렌즈가 바로 이 전설적인 계보에 속합니다.
하얀 배경 위에 놓인 라이카 녹티룩스 렌즈 3종. 왼쪽부터 50mm f/1.2 복각, 75mm f/1.25, 그리고 실버 색상의 50mm f/0.95 모델이 나란히 있다.
라이카의 광학 기술과 철학이 집약된 플래그십 렌즈, ‘밤의 빛’ 녹티룩스. 왼쪽부터 50mm f/1.2, 75mm f/1.25, 그리고 50mm f/0.95.
  • Summilux (주미룩스, F1.4):
    ‘최고’를 의미하는 ‘Summa’와 ‘빛’의 합성어로, 밝은 조리개 값과 뛰어난 화질의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라이카의 대표적인 고급 렌즈 라인업이에요. 저의 주력 렌즈인 35mm f/1.4 주미룩스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하얀 배경 위에 놓인 라이카 주미룩스 M 렌즈 3종. 왼쪽부터 검은색 28mm, 실버 35mm, 그리고 실버 50mm f/1.4 주미룩스 렌즈가 나란히 있다.
F1.4의 밝은 조리개와 타협 없는 화질을 양립시킨, 라이카 M 시스템의 실질적인 표준.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주미룩스 라인업입니다. 왼쪽부터 28mm, 35mm, 그리고 50mm.
  • Summicron (주미크론, F2.0):
    ‘Summa’와 ‘색’을 의미하는 ‘Chroma’의 합성어로 추정됩니다. F2.0이라는 결코 어둡지 않은 조리개 값과 컴팩트한 크기,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광학 성능으로 ‘M렌즈의 기준’이라 불리는 가장 상징적인 라인업이죠. 제가 5년간 동고동락했던 35mm f/2.0 주미크론(4세대)이 바로 이 계열의 전설적인 렌즈 중 하나입니다.
하얀 배경 위에 나란히 놓인 라이카 주미크론 M 렌즈 3종. 왼쪽부터 검은색 28mm, 실버 35mm, 그리고 실버 50mm f/2.0 주미크론 렌즈가 보인다.
F2.0이라는 조리개 값과 컴팩트한 크기, 그리고 타협 없는 광학 성능의 완벽한 조화. ‘M 렌즈의 기준’이라 불리는 주미크론 라인업입니다. 왼쪽부터 28mm, 35mm, 그리고 50mm.

이처럼 이름만 알아도, 우리는 그 렌즈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라이카 M 렌즈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열쇠입니다.

🔍 2. ‘라이카 룩(Leica Look)’이란 무엇인가: 3D-Pop과 마이크로 콘트라스트

그렇다면 이 렌즈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무엇이 다를까요? 많은 이들이 라이카 사진을 보며 ‘뭔가 다르다’고 느끼는 그 지점, 우리는 그것을 흔히 **’라이카 룩(Leica Look)’**이라고 부릅니다. 이 추상적인 느낌의 실체는 크게 두 가지 광학적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답니다.

화려한 붉은색, 노란색, 보라색 튤립이 만개한 꽃밭. 배경에는 초록빛 나무들과 흐릿한 하늘 아래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유모차를 밀고 지나가고 있다. 앞줄의 튤립들은 선명하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 뒤로 갈수록 부드럽게 흐려져 깊이감을 더한다.
눈앞에 펼쳐진 튤립의 향연. 선명하게 살아나는 꽃잎의 질감과, 꿈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배경. 바로 이것이 많은 이들이 매혹되는 ‘라이카 룩’의 한 조각입니다. 이제 그 비밀스러운 매력의 실체를 함께 파헤쳐 볼까요?
  • 입체감 (3D-Pop):
    라이카 룩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피사체가 배경으로부터 ‘툭’ 튀어나오는 듯한 놀라운 입체감입니다. 이는 단순히 얕은 심도로 배경을 날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죠. 라이카 렌즈는 초점이 맞은 면은 칼같이 선명하게, 그리고 초점에서 벗어나는 영역은 매우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독보적인 공간 묘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선명함과 부드러움의 급격한 전환이 우리 눈에 강력한 원근감과 입체감으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 마이크로 콘트라스트 (Micro-contrast):
    사진의 전체적인 명암 대비(콘트라스트)가 아니라, 아주 미세한 영역에서의 밝고 어두움의 경계를 얼마나 섬세하게 표현하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이에요. 마이크로 콘트라스트가 높은 라이카 렌즈는, 예를 들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의 질감, 거친 벽돌의 표면, 옷감의 직조 패턴 등을 매우 세밀하고 분명하게 묘사합니다. 이것이 사진 전체에 깊이와 풍부한 질감을 더해주며, 이미지를 더욱 생생하고 현실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이 두 가지 특징이 결합될 때, 라이카 사진은 단순한 2차원의 평면 이미지를 넘어, 마치 우리가 그 공간에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독보적인 현실감을 갖게 됩니다.

⏳ 3. 완벽함과 개성 사이: 저의 라이카 M 렌즈 여정

이러한 ‘라이카 룩’을 구현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그리고 렌즈의 설계 철학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왔습니다. 이는 제가 직접 경험한 세 개의 렌즈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나죠. 저의 이야기는 아마 많은 라이카 유저들이 공감할 만한 여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빈티지 렌즈의 ‘개성’: 35mm 주미크론 4세대와의 5년:
    제가 5년간 사용했던 **35mm 주미크론 4세대(1979-1996)**는 빈티지 렌즈의 매력을 대표합니다. 이 렌즈는 현대 렌즈처럼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아요. 조리개를 열면 주변부 화질이 부드러워지고, 역광에서는 아름다운 플레어가 생기기도 하죠. 하지만 바로 그 ‘결점’이 이 렌즈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특히 배경이 뭉개지는 보케(Bokeh) 표현은 거칠지 않고 마치 수채화처럼 몽환적으로 그려져 ‘보케의 왕(King of Bokeh)’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빈티지 렌즈는 이처럼 광학적 불완전함을 ‘개성’과 ‘감성’으로 승화시켜, 예측할 수 없는 매력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한 손에 들려 있는 작고 검은색의 라이카 35mm 주미크론 4세대 렌즈. 렌즈 경통에 초점 조절을 위한 반달 모양의 포커싱 탭이 달려있다.
저의 라이카 여정을 시작하게 해준, 5년간 동고동락했던 35mm 주미크론 4세대입니다. 작고 가벼운 크기, 그리고 ‘보케의 왕’이라는 별명처럼 수채화같이 부드러운 묘사가 일품이었죠. 제게 ‘완벽함’이 아닌 ‘매력’을 가르쳐준, 고마운 첫사랑 같은 렌즈입니다.
  • 현대 렌즈의 ‘완벽함’: 35mm 주미룩스 ASPH II:
    현재 저의 주력 렌즈인 35mm f/1.4 주미룩스-M ASPH II는 현대 라이카 렌즈가 추구하는 ‘광학적 완벽함’을 보여줍니다. 비구면 렌즈(ASPH)와 플로팅 엘리먼트(FLE) 같은 최신 기술로 무장하여, 조리개를 최대로 개방해도 중앙부터 주변부까지 압도적인 선예도를 자랑하죠. 색수차나 왜곡은 찾아보기 힘들고, 어떤 상황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결과물을 보장합니다. 현대 렌즈는 사진가의 의도를 한 치의 오차 없이, 가장 완벽한 형태로 구현해 내는 데 집중합니다.
검은색 라이카 주미룩스-M 35mm f/1.4 ASPH. 렌즈를 사선 위에서 촬영한 모습. 렌즈 경통에 새겨진 노란색과 하얀색의 거리계 및 조리개 수치가 보인다.
저의 시선이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많이 머무는 렌즈. 바로 저의 주력기인 35mm f/1.4 주미룩스입니다. 현대 라이카가 추구하는 완벽함과 F1.4의 밝음이 공존하는, 가장 믿음직한 파트너이죠.
  • 회화적 마법: 50mm 녹티룩스 f/1.2:
    그렇다면 저의 또 다른 렌즈, Noctilux-M 50mm f/1.2 ASPH는 어디에 속할까요? 이 렌즈는 1966년의 전설적인 렌즈를 복각한 모델로, 현대 기술로 만들어졌지만 빈티지 렌즈의 영혼을 품고 있습니다. f/1.2라는 극단적인 조리개 값에서 이 렌즈는 ‘완벽함’을 의도적으로 포기합니다. 초점이 맞은 부분은 섬세하지만, 그 주변은 회오리치듯 아득하게 녹아내리며 비현실적이고 회화적인 이미지를 창조하죠. 이는 기술적 결함이라기보다는, 사진가에게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의도된 마법’**에 가깝습니다. 녹티룩스는 완벽함과 개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사진을 한 폭의 그림으로 바꾸어주는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검은색 라이카 녹티룩스-M 50mm f/1.2 ASPH. 복각 렌즈의 상단 모습. 거리계와 조리개링의 하얀색, 빨간색 각인이 선명하게 보인다.
1966년의 전설을 현대 기술로 다시 깨운, 바로 그 렌즈. 현재 저의 손에 들려있는 Noctilux-M 50mm f/1.2 ASPH. 입니다.

♦️ 마무리하며: 라이카 M 렌즈,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

라이카 M 렌즈를 선택하는 것은 단순히 화각이나 조리개 값을 고르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을 선택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수채화처럼 부드러운 시선(빈티지 주미크론), 수정처럼 맑고 완벽한 시선(현대 주미룩스), 그리고 현실을 넘어 꿈을 꾸는 시선(녹티룩스). 이 모든 렌즈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언어로 세상과 대화하며, 그 중심에는 ‘라이카 룩’이라는 공통의 철학이 흐르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 다룬 내용은 라이카 렌즈라는 거대한 우주를 탐험하기 위한 ‘지도’에 해당합니다. 이 지도 위 각각의 빛나는 별(렌즈)들에 대한 더 깊고 상세한 이야기는, 추후 기획될 [라이카 렌즈 탐구] 시리즈를 통해 하나씩 풀어낼 예정이니 기대해주십시오.

다음 7편에서는, 이 경이로운 렌즈들이 ‘M 시스템’이라는 독특한 카메라와 만났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그 특별한 사용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7편] M시스템, 무엇이 특별한가?: 라이카 사용 경험에서 뵙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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