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미룩스와 녹티룩스 – 극한의 밝기를 향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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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룩스와 녹티룩스 극한의 밝기를 향한 도전
f/1.4에서 f/0.95까지 — 라이카가 빛을 쫓아온 70년의 기록
이 글의 핵심
- 주미룩스(Summilux)는 1959년 등장한 f/1.4 렌즈. ‘최고의 빛’을 뜻하는 이름처럼, 당시로선 상용 렌즈의 한계에 가까운 밝기였습니다.
- 녹티룩스(Noctilux)는 ‘밤을 비추는 빛’. 1966년 f/1.2 ASPH로 시작해 f/1.0을 거쳐 2008년 f/0.95 ASPH까지 이어졌습니다.
- 밝은 렌즈의 핵심 과제는 수차 억제. 비구면 렌즈, 특수 유리, 렌즈 배치 설계가 그 해법이었습니다.
- f/1.2 초기 녹티룩스의 ‘회오리 보케’와 f/1.0의 ‘몽환적 글로우’는 각각 다른 개성을 가진 렌더링입니다.
- 현행 f/0.95는 개방부터 중심이 선명한 현대적 설계. 오리지널 세대들의 부드러운 개방 화질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 실용적 고속 렌즈가 필요하다면 주미룩스, 극한의 경험과 독특한 렌더링을 원한다면 녹티룩스입니다.
대전 영시 축제. 무대 조명이 꺼지지 않은 거리였지만, 사실상 어두운 실내와 다름없는 환경이었습니다. M10-R에 녹티룩스 50mm f/1.2를 물리고 f/1.2로 열었더니, ISO를 크게 올리지 않아도 피사체가 또렷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게 가능한 거였구나.
그리고 곧 다음 질문도 따라왔죠. 도대체 이런 렌즈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1950년대에 f/2.0만 해도 ‘빛의 혁명’이었는데, 어떻게 f/1.4를 넘어 f/1.2, f/1.0, 나아가 f/0.95라는 세계까지 도달할 수 있었을까?
지난 1편 ‘엘마와 주미크론’에서는 라이카 M 렌즈의 시작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 다음 단계, 라이카가 ‘더 밝은 렌즈’를 향해 나아갔던 70년의 기록을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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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더 밝은 렌즈가 필요했을까
1950년대 중반, 주미크론 f/2.0은 이미 성공적인 렌즈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은 달랐습니다.
포토저널리스트들은 실내 촬영이 많았습니다. 전쟁터, 공장, 극장, 술집. 어두운 곳에서 결정적 순간을 포착해야 했죠. 당시 필름 감도는 ISO 100~400 정도. f/2.0으로는 부족한 상황이 많았습니다. 플래시를 터트리면? 순간이 깨집니다. 자연스러운 장면이 연출된 장면으로 바뀌고, 포토저널리즘의 원칙에도 어긋나죠.
라이카는 고민했습니다. 주미크론의 화질을 유지하면서 f/1.4를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드러납니다.
렌즈를 밝게 만드는 건 원리상 단순합니다. 조리개를 크게 열면 됩니다. 문제는 조리개가 커질수록 ‘수차(aberration)’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겁니다. 구면수차로 인해 개방에서 이미지가 부드러워지고, 코마수차로 점광원이 혜성 모양으로 번집니다. 주변부를 통과한 빛이 중심과 다른 지점에 맺히면서 화질이 흐트러지죠.
라이카의 광학 설계팀은 해결책이 필요했습니다. 더 많은 렌즈 매수, 특수 유리, 설계 구조의 전면 수정. 그리고 1959년, 답이 나왔습니다.
🚀 Summilux 50mm f/1.4 — 1959년, ‘최고의 빛’
주미룩스(Summilux)라는 이름은 라틴어에서 왔습니다. Summum(최고) + Lux(빛). 당시 f/1.4는 35mm 카메라용 렌즈로는 극한에 가까운 밝기였으니, 이름값을 했습니다.
7매 5군 구조로 설계됐습니다. 주미크론의 7매 6군과 유사하지만, 조리개를 한 스톱 더 밝게 하면서도 수차를 억제하기 위해 대칭형 더블 가우스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조리개를 중심으로 앞뒤 렌즈군이 대칭을 이루면서 수차를 서로 상쇄시키는 원리입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개방 f/1.4에서도 충분한 해상력을 보여줬고, 포토저널리스트들의 필수 장비로 자리잡았습니다. 1950~60년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세대가 실내와 밤거리에서 찍어낼 수 있었던 장면들 상당수가 이 렌즈 덕분이었습니다.
TACO 생각
주미룩스 35mm f/1.4 II FLE를 처음 샀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카페 안에서 플래시 없이 자연광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ISO 800 정도면 됐거든요. 그때 ‘아, 이 한 스톱 차이가 이런 의미구나’라고 실감했습니다.
🌌 Noctilux 50mm f/1.2 ASPH — 1966년, 비구면의 도전
주미룩스가 성공하자 라이카는 더 극단적인 목표를 세웠습니다. f/1.2 렌즈.
녹티룩스(Noctilux)라는 이름도 직관적입니다. Noctu(밤) + Lux(빛). 밤을 비추는 빛. 실제로 이 렌즈는 밤 촬영을 위해 설계됐습니다.
f/1.2를 구현하는 건 f/1.4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단순히 렌즈를 추가하는 방식으로는 해결이 안 됐죠. 라이카는 혁신적인 방법을 썼습니다. 비구면 렌즈(Aspherical lens) 기술이었습니다.
일반 구면 렌즈는 곡률이 일정합니다. 비구면은 곡률이 위치마다 달라서 구면수차를 훨씬 효과적으로 보정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1960년대 비구면 렌즈 제작이 극도로 어렵고 비쌌다는 겁니다. 최초의 Noctilux 50mm f/1.2 ASPH는 6매 4군 구조에 두 장의 비구면 렌즈를 사용했습니다. 매수는 적지만 각 렌즈의 정밀도 요구치가 극도로 높았죠.
그리고 이 렌즈에는 독특한 특성이 하나 생겼습니다. 개방에서 중심부는 비교적 날카롭지만 주변부가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화질, 그리고 ‘회오리 보케(swirl bokeh)’입니다. 비구면 렌즈의 광학적 특성과 주변부 광량저하가 결합하면서 배경이 중심에서 바깥으로 회오리치듯 흐릅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이 독특한 렌더링 때문에 오리지널 f/1.2는 지금도 컬트적 인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Noctilux-M 50mm f/1.0 — 1975년, 비구면을 포기하고 한 스톱 더
1975년, 라이카는 방향을 바꿨습니다. 비구면 렌즈를 포기하는 대신, 특수 고굴절 유리로 설계한 Noctilux-M 50mm f/1.0을 내놓았습니다. f/1.2보다 반 스톱 더 밝아졌습니다.
이유는 현실적이었습니다. 1960년대 비구면 렌즈 제작은 너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대신 새로운 고굴절 저분산 유리를 활용해 구면 렌즈만으로도 수차를 충분히 억제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 f/1.0 버전은 2008년까지 30년 넘게 생산됐습니다. 개방에서 매우 부드러운 화질과 글로우 효과가 특징입니다. f/2.0 정도로 조여야 전체적으로 선명해지죠. ‘라이카 룩’이라 불리는 감성의 상당 부분이 이 f/1.0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는데, 틀린 얘기가 아닙니다.
🚀 Noctilux-M 50mm f/0.95 ASPH — 2008년, 비구면의 귀환
2008년, 40년 만에 비구면 기술이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 비구면 렌즈 제작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거든요.
8매 5군 구조에 비구면 렌즈와 특수 유리를 아낌없이 투입했습니다. 조리개 수치는 f/0.95. 상용 렌즈 중 가장 밝은 값 중 하나입니다.
1966년 오리지널 f/1.2와 비교하면 화질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현행 f/0.95는 개방부터 중심부가 매우 선명합니다. 회오리 보케도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현대적이고 깨끗한 보케 성향이죠. 광학 기술 60년의 발전을 한눈에 보여주는 대비입니다.
TACO 생각
f/0.95가 실용적인 렌즈인가, 솔직히 물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심도가 너무 얕아 레인지파인더로 초점 잡기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눈에 초점 맞추면 코가 흐려질 정도입니다. 신품 기준 2천만 원 안팎이라는 가격도 그렇고요. 그럼에도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결국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용성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는 거죠.
📊 세대별 비교 —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
| 렌즈 | 출시 | 구조 | 무게 | 개방 화질 성향 | 중고 시세 |
|---|---|---|---|---|---|
| Summilux 50mm f/1.4 | 1959년 | 7매 5군 | 약 335g | 균형 잡힌 선명도 | 200~300만 원 |
| Noctilux 50mm f/1.2 ASPH (초기) | 1966년 | 6매 4군 | 약 450g | 부드러운 주변부, 회오리 보케 | 500~700만 원 (리이슈 기준) |
| Noctilux-M 50mm f/1.0 | 1975년 | 6매 4군 | 약 580g | 몽환적 글로우, 부드러운 렌더링 | 400~600만 원 |
| Noctilux-M 50mm f/0.95 ASPH | 2008년 | 8매 5군 | 약 700g | 개방부터 선명, 현대적 보케 | 1,500~1,800만 원 |
※ 시세는 컨디션과 시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세대별로 개방 화질의 성향이 확연히 다릅니다. f/1.2와 f/1.0은 개방에서 부드럽고 몽환적인 쪽이고, f/0.95는 현대적 선명도 쪽입니다. 어느 쪽이 낫다기보다 추구하는 방향 자체가 다릅니다.
🎨 35mm 화각 — Summilux 35mm f/1.4의 계보
고속 렌즈의 계보는 50mm만이 아닙니다. 35mm 화각에도 비슷한 역사가 있습니다.
Summilux 35mm f/1.4는 1960년 첫 출시 이후 여러 세대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쓰는 건 2022년에 나온 ASPH II FLE(2세대) 버전입니다.
50mm 녹티룩스들처럼 개방이 부드럽지 않습니다. f/1.4 개방부터 정직하게 선명합니다. 비구면 렌즈 덕분에 35mm 화각에서 f/1.4를 구현하면서도 수차를 잘 잡아냈죠. 무게는 약 320g. 녹티룩스 f/1.0(580g), f/0.95(700g)에 비하면 훨씬 가볍고, 일상용으로 쓰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TACO 생각
지금 제가 가장 자주 들고 나가는 조합이 M10-R + Summilux 35mm II FLE입니다. 스냅 촬영할 때 35mm 화각이 편합니다. 넓지도 좁지도 않고, 제가 실제로 보는 시야와 비슷한 느낌이거든요. 개방부터 믿을 수 있어서 빛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주저 없이 열 수 있습니다.
🔍 밝은 렌즈가 실제로 필요한가
요즘 카메라는 고감도 성능이 좋습니다. ISO 3200도 깨끗하게 나옵니다. 그럼 굳이 f/1.4나 f/0.95 같은 고속 렌즈가 필요할까요?
저조도 결과물만 따지면 ISO를 올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f/1.4 + ISO 3200으로 찍는 것과 f/2.8 + ISO 6400으로 찍는 건 노이즈 성격도, 디테일도 다릅니다. 그리고 레인지파인더의 경우 밝은 렌즈를 달면 광학 뷰파인더도 밝아져서 어두운 환경에서 프레이밍하기 편해지는 실질적 이점도 있습니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얕은 심도입니다. f/1.4로 열어두면 피사체 하나만 또렷하게 남기고 배경이 자연스럽게 녹아내립니다. 복잡한 배경이 사라지고, 내가 바라본 한 포인트만 살아남는 그 느낌입니다. 카페나 실내에서 트리 조명 같은 요소를 보케로 흩어트리면 평범한 공간도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겁니다.
📸 녹티룩스 50mm f/1.2 — 2년 사용 후기
2023년에 중고로 들였습니다. 현행 2022년 복각 리이슈 모델입니다. 가격이 부담스러웠지만 ‘한번 써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결국 이기지 못했습니다.
M9-P에 처음 물렸을 때 묵직했습니다. 약 450g. 주미룩스 35mm(약 320g)보다 확실히 무겁고, 렌즈 자체의 존재감이 다릅니다.
처음 f/1.2 개방으로 찍었을 때 당황했습니다. 레인지파인더로 초점을 잡는데, 살짝만 움직여도 초점이 빗나갔습니다. 눈에 초점 맞추면 귀가 흐릿하고, 코도 약간 흐려질 정도의 심도입니다. 처음엔 ‘렌즈 불량인가?’ 싶었을 정도였죠. f/2.8로 조이니까 전체가 날카로워졌습니다. 개방 화질이 부드러운 게 이 렌즈의 특성이었던 겁니다.
2년 정도 써보니 이렇게 쓰게 됐습니다. 실내 자연광 촬영에서는 f/1.2~f/1.4 개방, 인물 실내에서는 f/2.0~f/2.8, 스냅이나 풍경에서는 f/5.6~f/8. 개방은 정말 특별한 순간에만 씁니다. 그 조리개로 찍었을 때 나오는 화질이 주는 희열이 따로 있거든요. 합리적이지 않지만, 그게 이 렌즈를 계속 가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주미룩스 vs 녹티룩스 — 어느 쪽을 선택할까
두 렌즈는 목적 자체가 다릅니다. 주미룩스는 실용적인 고속 렌즈입니다. f/1.4면 웬만한 어두운 환경에서도 쓸 수 있고, 크기와 무게도 적당합니다. 녹티룩스는 특수 목적 렌즈입니다. 극한의 저조도나 극한의 얕은 심도, 또는 그 독특한 렌더링을 원할 때 쓰는 거죠.
많은 M 유저들이 “일상은 주미크론 f/2.0, 특별한 순간엔 주미룩스 f/1.4″라는 조합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두 렌즈가 역할 분담이 명확하거든요.
하나만 고르라면 저도 주미룩스를 고를 겁니다. 더 자주 쓰는 렌즈니까요. 하지만 녹티룩스를 포기할 순 없습니다. 가끔 f/1.2 개방으로 찍는 경험이 주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게 이 시리즈를 계속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녹티룩스는 ‘가끔 꺼내는 이유가 있는 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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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 묻는 것들
Q. 주미룩스와 녹티룩스, 초보자에게 어느 쪽이 더 적합한가요?
주미룩스 f/1.4를 권합니다. 개방부터 다루기 쉽고, 크기와 가격 부담도 적습니다. 녹티룩스는 개방에서 초점 잡기가 까다로워 레인지파인더 숙련도가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Q. 녹티룩스 f/1.0과 f/0.95, 어느 쪽이 더 ‘라이카다운’ 렌더링인가요?
이건 취향의 문제입니다. f/1.0은 몽환적인 글로우와 부드러운 개방 화질이 특징이고, f/0.95는 개방부터 선명한 현대적 설계입니다. ‘라이카 룩’이라는 감성을 원한다면 f/1.0에 가깝고, 극한의 밝기에서도 현대적 해상력을 원한다면 f/0.95입니다.
Q. 회오리 보케는 오리지널 f/1.2에서만 나타나나요?
주로 초기 f/1.2 ASPH에서 강하게 나타납니다. f/1.0에서도 조건에 따라 약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대표적 특성은 아닙니다. 현행 f/0.95는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Q. 비구면(ASPH) 렌즈는 왜 더 비싼가요?
비구면 렌즈는 곡률이 위치마다 다르기 때문에 연마 공정이 훨씬 복잡합니다. 구면 렌즈보다 제작 정밀도 요구치가 높고, 각 렌즈가 기준치를 충족하는지 확인하는 검사 공정도 더 까다롭습니다. 가격에 그 비용이 반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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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라이카 M 완전 가이드’의 연재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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