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으로 블랙 색상의 라이카 M 카메라를 쥐고, 셔터를 누를려고 하는 모습을 위에서 클로즈업한 사진.
| |

라이카 M 시스템: 불편함의 미학, 몰입의 경험 [라이카 특별 시리즈 7편]

안녕하세요, 기계의 숨결을 느끼며 셔터를 누르는 순간을 사랑하는 TACO입니다.

이제껏 우리는 라이카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그 빛을 조율하는 렌즈들의 이야기를 따라왔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그리고 과거의 저 역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M 시스템은 뭐가 그렇게 특별한가요?” “그 돈 주고 불편한 수동 카메라를 왜 써요?”

AF(자동초점)도 없고, 손떨림 방지도 없고, 연사도 느리고… 스마트폰이 1초 만에 찍고 보정하는 시대에, 굳이 이 ‘불편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유는 뭘까요? 그 해답은 숫자와 스펙이 아닌, 오로지 라이카 M 시스템을 통해 겪는 ‘경험’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번 7편에서는 스펙 시트에는 결코 담을 수 없는, 오직 사용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라이카 M 시스템만의 특별한 사용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카메라 리뷰가 아닌,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의 본질에 대한 저의 오랜 고찰이자 고백입니다.

Leica M 시리즈 클로즈업 사진. 빨간 Leica 로고, 셔터 다이얼, 수동 초점 거리계가 강조된 모습.
이 조용한 기계는 숫자가 아니라 ‘손끝의 기억’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 1. 모든 것은 손끝에서 시작된다: 수동 조작과 레인지파인더

라이카 M의 가장 큰 특징이자, 누군가에게는 가장 큰 진입 장벽. 그것은 바로 **’레인지파인더(Rangefinder)’**를 이용한 수동 초점 방식입니다.

라이카의 레인지파인더는 **’이중상 합치식’**이라는 아름다운 원리로 작동합니다. 뷰파인더 중앙의 밝은 초점 창 안에는 피사체의 모습이 두 개로 겹쳐 보입니다. 이때 렌즈의 초점링을 돌리면, 이 두 개의 상이 서서히 움직여 하나로 합쳐지게 되죠. 두 개의 상이 완벽하게 하나로 포개어지는 바로 그 순간, 그곳에 초점이 맞게 됩니다.

하지만 바로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가 아니라, ‘만든다’는 감각을 되찾게 됩니다.

카메라를 꺼내어, 프레임을 구성하고, 빛을 읽고, 거리와 조리개를 조절하고, 숨을 죽이며 셔터를 누르는 그 일련의 순간은… 마치 장인의 손으로 도자기를 빚는 것처럼, 사진 한 장에 나의 손끝과 감정이 모두 녹아드는 ‘행위’입니다.

제가 M9-P를 5년간 사용하고, 지금 M10-R을 사용하기까지, 이 초점 방식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일종의 ‘감각’이 되었습니다. 뷰파인더를 보지 않고도 손끝의 감각만으로 대략적인 초점 거리를 맞출 수 있게 된 순간, 저는 비로소 카메라가 제 몸의 일부가 된 듯한 일체감을 느꼈습니다.

“정확히 그 순간에, 나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 2. 세상을 보는 프레임: 뷰파인더와 여백의 미학

라이카 M을 특별하게 만드는 두 번째 요소는 바로 **’뷰파인더’**입니다. DSLR이나 미러리스처럼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뷰파인더라는 별개의 창을 통해 실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뷰파인더 안에는 렌즈의 화각을 나타내는 **’프레임 라인(Frame Line)’**이 밝은 선으로 표시되는데, 중요한 것은 이 프레임 라인 바깥의 세상까지도 함께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백의 미학’이죠.

이 말은 곧—

‘내가 지금 프레임 안에 무엇을 넣을지’, ‘무엇을 제외할지’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자동 노출, 자동 프레이밍, 얼굴 인식 같은 기술이 우리를 대신해 ‘선택’을 해주는 시대에, M 시스템은 말없이 속삭입니다.

“당신의 시선은 무엇인가요?” “당신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보고 있나요?”

흑백 사진 속, 한 남성이 라이카 M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집중하여 피사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그의 얼굴에는 진지한 표정이 담겨 있으며, 배경은 부드럽게 처리되어 인물에 시선이 집중된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뷰파인더 속 네모난 프레임과 나 자신만이 남는 순간. 라이카 M 시스템은 바로 그 순간, 우리에게 묻습니다.

프레임 밖에서 어떤 피사체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올지를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것.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말했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시스템은 없을 겁니다. 그 질문은 어느덧 사진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 됩니다.

🧱 3. 감각의 총합: 촉감, 무게, 그리고 침묵의 셔터

라이카 M 시스템은 단지 기능의 집합이 아니라, ‘감각’을 설계한 카메라입니다.

황동 재질의 바디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무게감과 완벽한 균형, 조리개링을 돌릴 때의 정교한 클릭감, 그리고 포커싱 탭이 손가락에 안착되는 그 촉감까지. 모든 것이 의도된 감성이며, 그 감성은 사진의 퀄리티뿐 아니라 사진가의 태도를 바꿔놓습니다.

그 감각의 정점은 바로 셔터입니다. “소곤” 혹은 “속삭임”에 가까운, 아주 작고 부드러운 기계음. 이 ‘침묵의 셔터’는 카메라의 존재감을 지워버립니다. 사진가는 투명인간처럼 장면에 스며들어, 피사체가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가장 진솔한 순간을 ‘훔칠’ 수 있게 되죠. 이 작은 속삭임은 사진가에게는 최고의 무기이자, 사진 속 인물에게는 최소한의 배려가 됩니다.

🤔 4. 왜 우리는 기꺼이 ‘불편함’을 선택하는가?

이 모든 수동 조작은 분명 ‘불편함’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기꺼이 이 불편함을 선택하는 것일까요?

한 장을 찍는 데 5초가 걸리더라도, 그 한 장이 평생의 기억이 된다면, 속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라이카 M 시스템은 빠른 속도를 버리는 대신, 사진에 **’깊이’**를 줍니다. 더 오래 바라보고, 더 천천히 숨을 고르고, 셔터를 누르기 전 여러 번 망설이고, 셔터를 누른 그 순간 ‘완성’을 믿는 감각.

이 느리고 의도적인 과정들은 사진가를 단순한 ‘촬영자’가 아닌,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창조자’**로 만듭니다. 결국 라이카 M 시스템은, 세상에 던지는 질문보다 내 안에 던지는 질문이 더 많은 카메라입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실버 색상의 라이카 M10-R 카메라와 검은색 가죽 케이스, 그리고 검은색 박스와 'MORE'라고 적힌 잡지가 함께 놓여 있는 모습. 카메라는 비스듬히 놓여 있으며, 잡지는 카메라 오른쪽에 펼쳐져 있다. 배경은 은은한 나무 무늬 벽이다.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는 도구를 잠시 내려놓고, 이제 내 안의 더 깊은 질문에 귀 기울일 시간. 라이카 M 시스템은 그렇게, 피사체 너머의 세상과 나를 마주하게 합니다.

✍️ 5. 연습과 극복의 과정: 라이카 M 시스템 사용법

물론, 앞서 이야기한 철학들은 M 시스템이라는 낯선 바다를 항해하기 위한 ‘나침반’과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 항해에는 돛을 올리고, 키를 잡는 구체적인 기술이 필요하죠. ‘불편함의 미학’도 결국 그 불편함을 어느 정도 극복했을 때 비로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저 역시 처음 M 시스템을 접했을 때, 빗나간 초점 때문에 수많은 사진을 버려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의도적인 연습을 통해, 이 시스템을 제 몸의 일부처럼 만들 수 있었죠. 혹시 M 시스템 입문을 꿈꾸거나, 이미 시작했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저의 작은 경험이 그 여정에 작은 등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중상 합치, 그 너머를 보다:
    처음에는 뷰파인더 중앙의 이중상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M 시스템의 정수는 **’피사체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기다리는 것’**에 있습니다. 정지된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는 연습이 끝났다면, 이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대상, 예를 들어 앞으로 걸어오는 사람이나 지나가는 자전거에 미리 초점을 맞춰두고, 내가 원하는 바로 그 지점에 들어왔을 때 셔터를 누르는 연습을 해보세요. 이것은 ‘결정적 순간’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짜릿한 훈련이 될 겁니다.
  • 렌즈의 눈금을 믿으세요 (목측, Zone Focusing):
    라이카 M 렌즈에는 아주 정교한 거리계와 피사계 심도 눈금이라는 ‘마법의 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특히 35mm 같은 광각 렌즈를 사용할 때, 이 눈금을 활용하는 **’목측(Zone Focusing)’**은 사진가를 뷰파인더로부터 해방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예를 들어, 화창한 날 조리개를 F8로 조이고, 렌즈의 초점 거리를 2미터에 미리 맞춰두는 겁니다. 렌즈의 심도 눈금을 보면, 대략 1.5미터에서 3미터 사이의 모든 것이 초점이 맞는 ‘존(Zone)’이 형성된 것을 알 수 있죠. 이제 뷰파인더 속 작은 창에 얽매일 필요 없이, 세상 전체를 바라보다가 그 ‘존’ 안에 결정적 순간이 들어오는 찰나에 셔터를 누르면 됩니다. 이것은 뷰파인더로부터의 ‘해방’이자, 세상과 직접 교감하는 가장 짜릿한 촬영 방식 중 하나입니다.
  • 나만의 기준점을 세우세요 (제로 세팅):
    햇빛이 좋은 맑은 날, 제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제로 세팅’이 있습니다. 바로 ‘조리개 F8, 셔터스피드 1/500초, ISO 200’ 입니다. 이 설정은 대부분의 주광 환경에서 안정적인 노출을 보장해주죠. 이렇게 자신만의 기준이 되는 세팅 값을 정해두면, 카메라를 꺼내는 순간 노출에 대한 기계적인 고민은 카메라에 맡겨두고, 저는 오직 세상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피사체의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됩니다. 기술이 아닌,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 모든 과정은 결국 카메라와 내가 얼마나 깊이 교감하느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조금 더딜지라도, 꾸준한 연습의 시간을 통해 이 차가운 금속과 유리의 기계가 마침내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경이로운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불편함은 사라지고, 오직 완전한 몰입과 창작의 즐거움만이 남게 되죠.

등을 보인 채, 양손으로 실버 색상의 라이카 M 카메라를 들고 뷰파인더에 집중하여 촬영하고 있는 남성의 모습. 그는 밝은 회색 티셔츠를 입고 검은색 카메라 가방을 메고 있으며, 배경은 흐릿한 도시 풍경이다.
마침내, 차가운 금속과 유리의 기계는 나의 손과 눈의 연장이 됩니다. 복잡한 조작은 익숙한 춤이 되고, 불편함은 온전한 몰입의 다른 이름이 됩니다. 오직 파인더 너머의 세상만이 존재할 뿐. 라이카 M 시스템이 선사하는 가장 경이로운 순간입니다.

마무리하며: M 시스템은 ‘기계’가 아닌, ‘철학’입니다

라이카 M을 쓰며 가장 자주 듣는 말은 “그 카메라로 찍으면 사진이 더 잘 나와요?”라는 질문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조심스레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요, 사진이 잘 나온다기보단… 그 카메라를 들면, 제가 더 ‘잘 보게’ 되더라고요.”

라이카 M 시스템은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진가가 세상을 더 깊이 바라보게 하는, 하나의 철학이자 세상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점점 더 빠르게, 자동으로, 간편하게 세상을 소비하고 있지만— 바로 그 흐름에 ‘반(反)하는’ 존재로서, 라이카 M은 오늘도 우리에게 속삭이죠.

“잠시 멈춰요. 그리고 다시, 바라봐요. 정말 보고 있나요?”


📌 다음 편 예고

하지만 라이카의 세계가 M 시스템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라이카의 압도적인 광학 성능에 현대적인 편리함이 더해진다면 어떨까요?

다음 [라이카 특별 시리즈 8편]에서는, 라이카 M 외의 또 다른 전설, **’라이카 M 외의 독보적 존재: Q, SL 시리즈’**의 세계로 떠나보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음 8편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 TACO 드림.

Similar Posts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