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핫셀블라드 X시스템 역사와 차이점 (X1D vs X2D) — 라이카 유저가 본 중형 미러리스
지난 포스팅에서 핫셀블라드가 어떻게 ‘전설’이 되었는지 살펴봤습니다. (지난 글: 핫셀블라드의 본질 보러가기)
하지만 전설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필름 시대의 제왕이었던 핫셀블라드는 디지털 시대, 특히 미러리스 시대에 들어서며 과감한 도전을 감행합니다. 바로 ‘X 시스템(X System)‘입니다.
“중형 카메라는 크고, 무겁고, 스튜디오에서 삼각대 위에만 있어야 한다.”
이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깨뜨린 것이 바로 X 시스템입니다.
오늘은 2016년 세상에 충격을 줬던 첫 번째 모델 X1D-50c부터, 2025년 현재 중형 미러리스의 정점이라 불리는 X2D 100C까지. 이 아름다운 카메라들의 진화 과정을 낱낱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라이카 유저가 바라본, ‘가장 섹시한 중형 카메라’의 계보입니다.
📷 1. 아름다운 시작, 그러나 인내의 미학 — X1D-50c (2016)
2016년, 카메라 업계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핫셀블라드가 세계 최초의 중형 미러리스 카메라 X1D-50c를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의 승리
이 카메라는 그냥 예쁜 게 아니었습니다. 충격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풀프레임 DSLR보다 작고 얇은 바디에 44×33mm 중형 센서를 담았습니다. 스웨덴 특유의 미니멀리즘 디자인, 손에 착 감기는 깊은 그립, 차가운 알루미늄의 질감. ‘카메라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를 보여준 모델이었습니다.
치명적인 단점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는 말이 딱 맞았습니다. 1세대 X1D는 예쁜 외모 뒤에 심각한 퍼포먼스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 부팅 속도: 전원을 켜고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때까지 약 10초 가까이 걸렸습니다.
- AF 속도: 컨트라스트 AF 방식이라 초점이 느리고 부정확했습니다.
- 발열: 조금만 오래 쓰면 그립이 뜨끈해졌습니다.
결국 X1D는 “결과물은 환상적이지만, 찍는 과정은 수행(修行)이다”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라이카 M을 쓰는 저도 “이건 좀 심한데?”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 2. 정상화의 과정 — X1D II 50C (2019)
3년 뒤, 핫셀블라드는 후속작 X1D II 50C를 내놓습니다. 외관은 전작과 거의 똑같았습니다. 워낙 디자인이 완벽했기에 바꿀 필요가 없었겠죠. 하지만 내부는 완전히 갈아엎었습니다.

쾌적해진 퍼포먼스
가장 큰 변화는 ‘반응 속도’였습니다.
- 부팅 속도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이제 기다려줄 만합니다.
- 뷰파인더(EVF) 주사율이 높아져 끊김이 줄었습니다.
- 후면 터치스크린 반응이 스마트폰 수준으로 빠릿해졌습니다.
여전한 아쉬움
하지만 센서는 여전히 5,000만 화소였고, AF 방식도 그대로였습니다. “이제야 보통의 카메라가 되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혁신이라기보다는, 1세대의 베타테스트를 끝내고 완성품을 내놓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중형 카메라라는 포지션은 여전히 독보적이었습니다.
🚀 3. 게임 체인저의 등장 — X2D 100C (2022)
그리고 2022년, 핫셀블라드는 칼을 갈고 닦아 X2D 100C를 출시합니다. 저는 이 모델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아, 이제 변명은 끝났구나.”

이 카메라는 스펙 시트만 봐도 압도적입니다. 전작들의 아쉬움을 단순히 개선한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차원으로 도약했습니다.
X2D 100C가 ‘괴물’인 이유 3가지
1) 1억 화소와 IBIS (바디 손떨림 보정)
1억 화소? 사실 다른 브랜드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X2D의 핵심은 ‘5축 7스톱 손떨림 보정(IBIS)’입니다.
중형 카메라는 화소가 높아 미세한 흔들림에도 취약합니다. 그래서 삼각대가 필수였습니다. 하지만 X2D는 강력한 손떨림 보정 덕분에 핸드헬드(들고 찍기)로 1억 화소를 온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1/15초 셔터스피드에서도 선명한 사진을 건질 수 있다는 건, 중형 카메라의 혁명입니다.
2) 위상차 AF 탑재
드디어! 핫셀블라드에도 위상차(Phase Detection) AF가 들어갔습니다. 소니나 캐논만큼은 아니지만, 이제 일상적인 스냅 촬영에서 스트레스받지 않을 수준으로 빠르고 정확해졌습니다.
3) 내장 1TB SSD
이건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SD카드 슬롯 따위가 아닙니다. 카메라 내부에 1TB SSD를 심어버렸습니다.
쓰기 속도가 워낙 빨라 1억 화소 RAW 파일도 거침없이 저장됩니다. 메모리카드를 집에 두고 왔다고요? 걱정 없습니다. 이 카메라 자체가 거대한 하드디스크니까요.
과감한 삭제: No Video
재미있는 점은 동영상 기능을 아예 빼버렸다는 겁니다. 마이크 단자도, 영상 녹화 버튼도 없습니다.
“우리는 사진기다. 영상은 딴 거로 찍어라.”
이런 뚝심 있는 철학, 저는 사랑합니다. 마치 라이카가 M 시리즈에서 동영상을 뺀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 4. 렌즈의 진화 — 새로운 XCD V 시리즈
바디만 좋아진 게 아닙니다. X2D와 함께 렌즈군도 ‘V 시리즈’로 리뉴얼되었습니다.

- 디자인: 클래식한 금속 경통 디자인으로 바뀌어 X2D와 완벽한 일체감을 줍니다.
- 포커스 클러치: 초점 링을 당기면 즉시 수동 초점(MF)으로 전환됩니다. 거리계 눈금도 드러납니다. 이 손맛, 라이카 유저라면 환장합니다.
- 리프 셔터: 렌즈 내장 셔터도 진화했습니다. 기존 1/2000초를 넘어, 최대 1/4000초까지 플래시 전 구간 동조가 가능해 대낮에 조명을 쓰기 더 좋아졌습니다.
특히 XCD 55V f/2.5 렌즈는 풀프레임 환산 약 43mm 화각으로, 사람의 시선과 가장 비슷한 편안함을 줍니다. X2D 유저라면 무조건 첫 번째로 들여야 할 렌즈입니다.
🎯 5. 요약: X 시스템의 계보 정리
복잡한 내용을 한 눈에 비교해 드리겠습니다.
| 모델명 | 출시년도 | 화소 | AF 방식 | 손떨림 보정 | 저장매체 | 한줄평 |
|---|---|---|---|---|---|---|
| X1D-50c | 2016 | 50MP | 컨트라스트 | 없음 | 듀얼 SD | 예쁜 쓰레기.. 아니, 예쁜 조각상 |
| X1D II | 2019 | 50MP | 컨트라스트 | 없음 | 듀얼 SD | 이제야 카메라 구실을 함 |
| X2D 100C | 2022 | 100MP | 위상차(PDAF) | 5축 IBIS | 내장 1TB SSD + CFx | 중형 미러리스의 완성형 |
마무리 — 그래서, 살 것인가?
X 시스템은 분명 비쌉니다. X2D 100C 바디와 렌즈 하나를 구성하면 소형차 한 대 값이 나옵니다.
가성비를 따진다면 후지필름의 GFX 시리즈가 훨씬 합리적입니다. 기능도 더 많고 렌즈도 다양하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라이카를 가성비로 사용하지 않듯, 핫셀블라드 역시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에 있습니다.
‘HNCS(Hasselblad Natural Colour Solution)’가 만들어내는 깊고 우아한 색감. 금속 덩어리를 쥐는 듯한 차갑고 묵직한 촉감. 단순하고 직관적인 UI가 주는 촬영의 몰입감.
라이카 M10-R이 ‘촬영하는 행위의 즐거움’을 준다면, 핫셀블라드 X2D는 ‘결과물을 확인하는 순간의 압도감’을 줍니다. 1억 화소로 담긴 사진을 모니터에서 100% 확대했을 때의 그 디테일. 그건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마약 같은 것입니다.

X2D 100C는 분명 비쌉니다. 하지만 중형 미러리스의 정점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 카메라만 한 선택지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M10-R 옆에 X2D가 놓일 날이 올까요? 통장과 협의 중입니다.
[다음 글 예고] 왜 핫셀블라드 사진은 다르게 느껴질까? — HNCS 집중 분석
GFX와 X2D, 같은 소니 센서를 쓴다는데 결과물 느낌은 왜 이렇게 다를까요? 정답은 핫셀블라드만의 컬러 솔루션, 바로 HNCS에 있습니다. 라이카의 진득함과는 또 다른, 투명하고 깊이 있는 핫셀블라드만의 색(色). 다음 글에서는 라이트룸 보정을 잊게 만든다는 이 마법 같은 컬러 사이언스에 대해, 라이카 유저의 시선으로 분석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