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테이블 위에 놓인 라이카 M10-R과 Summilux 35mm f/1.4 ASPH II 렌즈. 실버 상판과 블랙 바디의 클래식한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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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카 M10-R 2년 사용기 – 카메라가 아니라 내가 바뀌었다

라이카 M10-R 2년 사용기 – 초안 v3

카메라 · 오너의 이야기 · Leica M

라이카 M10-R 2년 사용기
카메라가 아니라 내가 바뀌었다

M9-P 5년, M10-R 2년. 레인지파인더는 익숙한데 이 카메라가 낯설었던 이유.

TACO 2026. 04 카메라 · 오너의 이야기 라이카 · M10-R · 사용기

이 글의 핵심

  • M9-P 5년 오너가 M10-R에서 처음 부딪힌 것 — 조작이 아니라 결과물의 낯섦
  • 4,000만 화소 CMOS가 강제한 촬영 방식의 변화 — CCD와 다르게 써야 했다
  • Noctilux 50mm f/1.2, 처음 1년과 다음 1년이 완전히 다른 이유
  • 니콘 Zf를 직접 만져보고 10분 만에 내려놓기까지
  • M11-P는 여전히 꿈인가 — 2년 후의 솔직한 대답

M9-P를 5년 쓰고 M10-R로 넘어왔을 때, 레인지파인더 조작 자체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중상 맞추는 건 이미 손에 배어 있었고, 수동 조리개와 셔터 다이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M 시스템의 방식은 이미 제 루틴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데서 막혔습니다. 카메라 조작이 아니라 결과물이었습니다. M10-R로 찍은 사진이 처음엔 낯설었습니다. 선명하고, 정직하고, 과할 만큼 디테일했습니다. M9-P의 CCD가 만들어내던 그 부드럽고 따뜻한 질감이 없었습니다. 분명 제가 찍은 사진인데, 익숙한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이번 글은 그 낯섦과 적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레인지파인더가 아니라 M10-R이라는 특정 도구에 적응하는 과정. 카메라 스펙이나 성능 이야기는 1년 사용기에서 충분히 다뤘으니, 이번엔 그 이후를 써보려 합니다.

🖼️ M10-R이 낯설었던 이유 — CCD가 아니었다

M9-P의 CCD 센서는 독특합니다. 색이 정확하다기보다 분위기가 있습니다. 피부톤이 따뜻하고, 하이라이트가 서서히 날아가고,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계조가 있습니다. 후보정을 거의 안 해도 필름스럽다는 말이 나오는 건 그 때문입니다. 5년 동안 그 결과물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M10-R의 4,000만 화소 CMOS는 달랐습니다. 색이 더 정확하고, 디테일이 압도적이고, 다이나믹 레인지가 넓습니다. 스펙만 보면 모든 면에서 진보입니다. 그런데 처음 한두 달 동안은 이 ‘정확함’이 오히려 어색했습니다.

인물 사진이 특히 그랬습니다. M9-P로 찍을 땐 피부가 부드럽게 뭉개지면서 자연스러웠는데, M10-R은 너무 많이 보여줬습니다. 모공, 잔주름, 머리카락 한 올. 렌즈가 바뀐 게 아닌데 사진이 달라 보였습니다. 해상도가 올라간 게 아니라 성격이 바뀐 느낌이었습니다.

적응은 촬영 방식을 바꾸면서 시작됐습니다. M9-P 때는 피사체에 가까이 붙는 걸 좋아했습니다. CCD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이 근접 촬영에서 잘 살아났거든요. M10-R에서 같은 방식으로 찍으면 너무 날카롭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거리를 조금 늘렸고, 배경을 더 신경 쓰게 됐습니다. 4,000만 화소의 크롭 여유를 활용하는 방법도 익혔습니다. M9-P 때는 구도를 나중에 바꿀 수 없었지만, M10-R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소나무와 한옥 건물이 어우러진 전통 정원 풍경. 라이카 M10-R + Summilux 35mm f/1.4 ASPH II 촬영.
Summilux 35mm f/1.4 ASPH II. 소나무 수피 결, 기와 한 장 한 장, 잔디 한 올까지. M10-R은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까지 보여줍니다. ⓒ TACO

TACO 생각

M9-P에서 M10-R로 넘어오는 게 단순 업그레이드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다른 성격의 카메라로 갈아탄 것에 가까웠습니다. 레인지파인더라는 방식은 같지만, 결과물을 대하는 태도를 처음부터 다시 잡아야 했습니다. 그게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고요.

🌑 Noctilux 50mm f/1.2 — 통제에서 유도로

Noctilux 50mm f/1.2는 처음 1년 동안 솔직히 잘 못 쓴 렌즈였습니다. 레인지파인더 조작 자체는 익숙했는데, f/1.2라는 숫자는 달랐습니다.

Summilux 35mm f/1.4도 피사계 심도가 얕지만 그나마 다루기 쉬운 편입니다. Noctilux 50mm는 수준이 달랐습니다. 1m 거리에서 f/1.2로 찍으면 초점 면이 워낙 얇아서, 이중상을 맞췄다고 생각해도 집에 돌아와서 확인하기 전까지 안심이 안 됐습니다. 1년 차에 초점 실패율이 전체의 20%였는데, Noctilux를 쓴 날은 그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문제는 실패율이 아니었습니다. 실패한 사진들을 보면서 “왜 나갔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게 더 컸습니다. 이중상은 맞췄는데 왜 흐리지? 그 감각이 없었습니다.

2년 차에 달라진 건 Noctilux를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처음엔 이 렌즈로 “정확한 사진”을 찍으려 했습니다. f/1.2의 심도를 내가 원하는 곳에 정밀하게 맞추는 것. 이건 처음부터 목표 설정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통제 대신 유도를 합니다. 이 렌즈가 어떤 거리에서 어떻게 피사체를 감싸는지, 빛이 어떻게 번지는지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제가 움직입니다.

f/1.2로 찍은 사진은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쓸 수 있고 없고의 문제다.
태화강 국가정원의 꽃 반지 조형물과 분수. 라이카 M10-R + Noctilux 50mm f/1.2 ASPH 촬영.
태화강 국가정원. 초점을 정확히 통제하려는 대신, 이 렌즈가 장면을 감싸는 방식을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 TACO

초점이 정확히 맞지 않아도 “쓸 수 있는 사진”과 “버려야 하는 사진”을 구분하는 기준이 생겼습니다. 그 기준이 생기고 나서부터 Noctilux가 즐거워졌습니다. 지금은 Summilux 35mm와 거의 반반으로 씁니다. 분위기가 필요한 날엔 50mm, 선명하게 남겨야 하는 날엔 35mm. 이 판단 자체가 1년 전엔 없었습니다.

🏪 니콘 Zf를 내려놓은 날

작년에 니콘 Zf를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M10-R의 AF 공백과 영상 불가를 메울 서브 바디로요. 그 고민을 블로그에 썼고, 마지막에 “조만간 매장에 가서 직접 만져보겠다”고 끝냈습니다.

실제로 갔습니다. Zf를 손에 들고 한 10분쯤 됐을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려놨습니다. 나쁜 카메라여서가 아닙니다. Zf는 정말 잘 만든 카메라입니다. 황동 다이얼 조작감도 좋고, FM2를 오마주한 디자인도 설득력 있습니다. 눈 인식 AF도 인상적이었고, 뷰파인더 스펙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그런데 M10-R 생각이 났습니다. Zf를 쥐고 있는데 M10-R이 그리웠습니다. Zf는 “잘 만든 카메라”라는 인상이 강했는데, M10-R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차갑고 묵직한 황동 상판, 셔터를 누를 때 손 전체에 전달되는 진동, 뷰파인더로 세상을 보는 그 방식. 이것들이 Zf에는 없었습니다.

M9-P를 5년 쓰면서 레인지파인더의 물성에 완전히 익숙해진 몸이라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EVF로 세상을 보는 게 편하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좋다는 건 다른 얘기였습니다. OVF를 통해 프레임 밖까지 함께 보는 그 방식, 그게 없으면 찍는 행위 자체가 좀 달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TACO 생각

Zf를 내려놓은 건 합리적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M9-P부터 쌓인 7년의 레인지파인더 경험이 다른 방식을 거부한 것에 가까웠습니다. 이게 맞는 선택인지는 아직도 확신은 없습니다. 다만 그 10분 동안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분명해졌습니다.

🔄 2년이 지나 달라진 것, 달라지지 않은 것

M9-P에서 M10-R로 넘어오면서 달라질 거라고 예상했던 것들은 대부분 맞았습니다. 해상도, ISO 성능, 배터리. 이건 예상대로였습니다.

예상 못 했던 변화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촬영 시간대가 달라졌습니다. M9-P 때는 실용적인 ISO 상한선이 640 정도였습니다. 해 있을 때만 제대로 찍을 수 있었습니다. M10-R에서 ISO 3200을 편하게 쓰게 되면서 저녁 거리와 조명 있는 실내가 촬영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왔습니다. 단순히 범위가 넓어진 게 아니라, 사진을 찍으러 나가는 시간대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대전 야외 공연장의 밤 풍경. 무대 LED 화면과 조명 아래 관객석이 가득 찬 모습. 라이카 M10-R + Noctilux 50mm f/1.2 ASPH 촬영.
대전 0시 축제. M9-P였다면 이 상황에서 셔터를 누르지 못했을 겁니다. ISO를 올릴 수 있다는 건 찍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 TACO

사진을 고르는 기준도 달라졌습니다. M9-P 때는 색감이 먼저였습니다. CCD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 있으면 선명도는 어느 정도 타협했습니다. M10-R에서는 그 기준이 흔들렸습니다. 처음엔 선명도를 우선했는데, 지금은 다시 “이 장면이 왜 좋은가”가 먼저입니다. 초점이 약간 흐려도 살리는 사진이 생겼고, 선명한데 버리는 사진도 생겼습니다.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레인지파인더로 찍는 이유. 느리게, 한 장씩, 의도를 가지고 찍는 방식. 이건 M9-P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M10-R이 아무리 ISO 성능이 좋아져도, 연사로 쏟아붓는 방식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게 찍고 싶을 땐 다른 카메라를 쓰면 됩니다. 레인지파인더는 그 방식이 아닌 카메라라는 것도 그대로입니다.

M9-P → M10-R 2년 — 예상했던 변화와 예상 못 한 변화

  • 예상했던 것: 해상도, ISO 성능, 배터리 향상 — 모두 맞았다
  • 예상 못 한 것: 결과물 성격이 달라 처음엔 적응이 필요했다
  • 예상 못 한 것: 촬영 가능 시간대가 저녁 이후까지 확장됐다
  • 예상 못 한 것: 사진 선별 기준이 CCD 시절과 다르게 재설정됐다
  • 변하지 않은 것: 레인지파인더로 찍는 방식과 이유

🤔 M11-P, 2년이 지나도 여전히 꿈인가

1년 사용기를 마무리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언젠가는 업그레이드를 단행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 200만 원 차이로 추가 렌즈 사는 데 보태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다.”

2년이 지난 지금, 그 생각이 바뀌었냐고 하면.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M11-P는 여전히 완성도 높은 바디입니다. 6,000만 화소, 빨간 딱지 없는 스텔스 디자인, 256GB 내장 메모리, 하판 없이 배터리를 교체하는 편의성. 솔직히 탐납니다. 특히 블랙 아웃 디자인은 M10-R의 빨간 딱지가 거슬릴 때마다 눈에 밟힙니다.

그런데 M9-P에서 M10-R로 넘어올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그때는 이유가 명확했습니다. M9-P의 ISO 한계가 촬영 상황을 제한했고, 배터리가 200장도 못 버텼고, 다이나믹 레인지가 좁아 노출 맞추기가 계속 어려웠습니다. 그 불편함이 반복적으로 쌓이면서 결국 넘어왔습니다.

M10-R에서 M11-P는 그런 순간이 없습니다. 4,000만 화소가 부족한 상황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파일 용량이 이미 60~80MB인데, 6,000만 화소가 되면 그게 50% 더 커집니다. 256GB 내장 메모리가 아쉬웠던 적도 없고요. M9-P에서 M10-R로 넘어갔던 것처럼 “이건 바꿔야겠다”는 순간이 와야 움직일 것 같습니다. 아직은 그 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

M11-P가 더 좋은 카메라인 건 맞다.
그런데 M10-R을 바꿔야 할 이유는 아직 없다.
카페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인 라이카 M10-R과 Summilux 35mm f/1.4 ASPH II 렌즈, 그리고 스타벅스 커피 한 잔.
바꿔야 할 이유가 생기면 그때 바꾸면 됩니다. 아직은 이 자리가 편합니다. ⓒ TACO

자주 묻는 것들

Q. M9-P를 오래 쓰다가 M10-R로 넘어오면 적응이 어렵지 않나요?

조작 방식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레인지파인더 방식이 동일하니까요. 다만 결과물의 성격이 달라서 처음엔 낯설 수 있습니다. CCD에서 CMOS로, 1,800만 화소에서 4,000만 화소로 바뀌면 사진이 더 정직하고 선명하게 나옵니다. 특히 M9-P의 색감과 분위기에 많이 익숙해진 분이라면, M10-R 결과물이 처음엔 차갑고 날카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적응에 서너 달 정도 걸렸습니다.

Q. M10-R을 2년 쓰고 나서 후회하는 부분이 있나요?

카메라 자체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처음에 Noctilux를 너무 일찍 들인 건 아니었나 싶습니다. 레인지파인더 조작은 익숙했지만, f/1.2 극대광 렌즈는 다른 차원의 숙련이 필요했습니다. Summilux 35mm 하나로 좀 더 오래 쓰다가 들였으면 초반 실패 사진이 덜 쌓였을 겁니다.

Q. 다음 카메라는 뭘 생각하고 있나요?

M11-P가 1순위이긴 한데, 지금 당장 M10-R을 처분하고 넘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요즘은 다른 방향으로 눈이 가기도 합니다. 핫셀블라드 X2D 쪽이요. M 시스템의 연장선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포맷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M9-P에서 M10-R로 넘어올 때처럼 “이건 바꿔야겠다”는 순간이 오면 그때 결정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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