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SA는 왜 핫셀블라드를 달에 가져갔을까 | 아폴로 계획과 과학 카메라
요즘 아폴로 계획 관련 자료들을 다시 찾아보고 있습니다. 라이카 유저로서 중형 필름 카메라에 대한 관심이 생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핫셀블라드(Hasselblad)의 역사를 공부하게 되더라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건 역시 달 착륙 이야기였습니다.
1969년 7월, 인류는 처음으로 달 표면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록한 건 스웨덴의 중형 필름 카메라, 핫셀블라드 500EL을 기반으로 한 NASA 전용 ‘HDC(Data Camera)였습니다. NASA는 왜 하필 핫셀블라드를 선택했을까요? 그리고 왜 12대의 카메라 본체와 렌즈를 달에 그대로 두고 왔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NASA와 핫셀블라드의 협력이 단순한 ‘사진 촬영’을 넘어 어떤 과학적 의미를 가졌는지, 그리고 달에 남겨진 카메라들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정리해봤습니다. 카메라 덕후라면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우주 비행사가 제안한 카메라
NASA의 초창기 우주 프로그램인 머큐리 계획(Project Mercury)에서는 일반적인 35mm 카메라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물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해상도도 낮았고, 과학적 분석에 활용하기에는 부족했죠.

전환점을 만든 건 우주 비행사 월터 시라(Walter Schirra)였습니다. 사진 애호가였던 그는 자신이 소유한 핫셀블라드 500C를 NASA에 제안했습니다. 중형 필름(70mm)을 사용하는 핫셀블라드는 35mm 필름보다 3~4배 넓은 면적을 갖고 있었고, 이는 압도적인 해상도와 디테일을 의미했습니다.
NASA는 이 카메라의 잠재력을 인정했습니다. 단, 그대로 쓸 수는 없었습니다. 우주라는 극한 환경을 견딜 수 있도록 철저한 개조가 필요했습니다.
🔧 달 표면을 위한 과학적 개조
달의 환경은 카메라에게 최악의 조건입니다. 대기가 없어 태양 직사광선 아래서는 120°C까지 치솟고, 그늘에서는 영하 150°C까지 떨어집니다. 진공 상태에서 발생하는 정전기와 미세한 달 먼지는 정밀 기기의 치명적인 적이었죠.

실버 색상의 이유
지구에서 쓰는 핫셀블라드는 대부분 검은색입니다. 하지만 달 표면에서 사용된 HDC(Hasselblad Data Camera)는 밝은 실버 색상으로 마감되었습니다. 이건 디자인이 아니라 열역학적 선택이었습니다. 실버 코팅은 태양 복사열을 반사하여 내부 필름과 기계 장치가 과열되는 것을 막아줬습니다.
레조 플레이트의 비밀
달에서 촬영된 사진을 자세히 보면 십자 모양의 검은 마크(+)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이건 레조 플레이트(Réseau Plate)라는 특수 유리판 때문입니다.

이 십자 마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렌즈의 왜곡을 보정하고, 사진 속 물체의 실제 크기와 거리를 정밀하게 계산하는 기준점 역할을 합니다. 지질학자들은 이를 통해 암석의 크기나 크레이터의 깊이를 mm 단위까지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진공 상태에서 필름이 감길 때 발생하는 정전기는 스파크를 일으켜 필름을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레조 플레이트는 특수 전도성 코팅을 통해 이 전하를 방출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칼 자이스 렌즈의 광학 성능

달 사진의 압도적인 선명도는 칼 자이스(Carl Zeiss)의 60mm f/5.6 Biogon 렌즈 덕분입니다. 이 렌즈는 상의 왜곡을 거의 완벽하게 억제하도록 설계되어, 과학적 지형 분석에 최적화되었습니다.
특히 우주복 장갑을 낀 채로도 조작할 수 있도록 모든 레버와 링이 거대하게 개조되었습니다. 진공 상태에서 윤활유는 증발하기 때문에, 모든 가동부는 특수 윤활 처리를 거쳤습니다.
🌑 달에 남겨진 12대의 카메라
아폴로 11호부터 17호까지, 총 12대의 핫셀블라드 카메라 본체와 렌즈는 현재도 달 표면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건 감성적인 이유가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과학적 결정이었습니다.

질량과의 싸움
달에서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달 착륙선의 상승단은 중력을 이겨내야 합니다. 하지만 연료량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달 암석 샘플을 가져와야 했고, 이를 위해 ‘지구로 가져가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모두 버려야 했습니다.
달에 남겨진 물품들:
- 카메라 본체 12대
- 칼 자이스 렌즈
- 월면차(LRV)
- 생명 유지 장치 배낭
- 기타 장비들
회수된 것:
- 촬영이 완료된 필름 매거진
필름만 분리해서 가져오면 됐습니다. 카메라 본체는 임무를 완수했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우주 노출 실험으로서의 가치
역설적으로 달에 남겨진 카메라들은 그 자체로 장기적인 과학 실험체가 되었습니다. 수십 년간 극심한 온도 변화와 강력한 우주 방사선, 미세 운석의 충돌을 견디고 있는 이 카메라들을 훗날 인류가 회수한다면, 재료 공학적 측면에서 우주 환경이 정밀 기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엄청난 데이터를 얻게 될 것입니다.
🔬 사진이 증명한 과학적 사실들
핫셀블라드로 촬영된 사진들은 단순한 ‘기념사진’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진들은 인류의 지식을 확장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습니다.
지질학적 컨텍스트 제공
암석 샘플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그 암석이 어떤 지층에서, 어떤 각도로 놓여 있었는지를 아는 것이 핵심입니다. 핫셀블라드로 촬영된 고해상도 사진들은 암석의 원천 지형을 재구성하여 달의 생성 기원을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가 되었습니다.
지구 돋이(Earthrise)의 의미

아폴로 8호에서 촬영된 ‘지구 돋이(Earthrise)’ 사진은 인류가 처음으로 자신의 고향을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대기 과학과 생태학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일깨웠고, 현대 환경 보호 운동의 기점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듭니다. 라이카로 스냅을 찍으면서 ‘순간을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곤 하는데, 이 사진은 그 차원을 완전히 뛰어넘는 기록이거든요.
음모론에 대한 광학적 반박
“왜 사진에 별이 보이지 않는가?“라는 음모론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핫셀블라드의 노출 설정은 명확한 과학적 해답을 제시합니다.
달 표면은 태양광을 매우 강하게 반사하기 때문에, 우주 비행사와 지표면을 찍기 위해서는 셔터 속도를 매우 빠르게 설정해야 했습니다. 이는 상대적으로 희미한 별빛이 필름에 기록될 시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라이카로 밤하늘을 찍어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별을 찍으려면 장노출이 필수인데, 달 표면은 태양 아래에서 찍는 거니까 당연히 빠른 셔터 속도를 써야 하는 거죠. 사진의 광학적 정확성이 오히려 음모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겁니다.
🚀 렌즈에 담긴 인류의 미래
NASA와 핫셀블라드의 협업은 기술이 예술적 기록을 넘어 어떻게 과학적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입니다. 달에 남겨진 12대의 카메라는 인류가 그곳에 발을 내디뎠다는 물리적 증거이자, 더 넓은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 ‘무게’라는 현실적 제약과 싸워야 했던 과학적 고뇌의 산물입니다.
이제 아르테미스(Artemis) 계획을 통해 인류는 다시 달로 향합니다. 이번에는 핫셀블라드뿐만 아니라 최첨단 디지털 센서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겠지만, 60년 전 진공 속에서 찰칵 소리를 내며 인류의 지평을 넓혔던 그 기계식 메커니즘의 경이로움은 영원히 달의 먼지 속에 기록될 것입니다.
카메라 덕후로서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결국 카메라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도구가 아니라, 인류의 지식과 경험을 확장하는 매개체였던 거죠. 라이카로 일상을 기록하는 것과 핫셀블라드로 달을 기록하는 것, 스케일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남기는 것.
사진이 특별해지는 순간은 셔터를 누를 때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 이미지를 바라볼 때입니다. 달에서 찍힌 사진이 6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를 멈춰 세우는 것처럼, 오늘의 평범한 기록도 언젠가 누군가의 시선을 붙잡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찍고, 남기고, 기록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