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 M10-R 실버 크롬에 주미룩스 35mm f/1.4 렌즈를 장착한 모습, 흰 테이블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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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서드파티 M 렌즈인가 – 가격·화질·감성의 현실

카메라 · 브랜드 스토리: 라이카

왜 서드파티 M 렌즈인가 가격·화질·감성의 현실

라이카 M 서드파티 렌즈 완전 가이드 1편 — 전체 지형도

TACO 2026. 04 브랜드 스토리: 라이카 라이카M · 서드파티렌즈 · 보이그랜더 · 칼자이스

이 글의 핵심

  • 라이카 정품 M 렌즈는 주미크론 50mm 신품 기준 400만 원대, 주미룩스 35mm는 900만 원에 육박한다.
  • 서드파티 시장은 유럽계(보이그랜더, 칼 자이스 ZM)와 아시아계(7Artisans, TTArtisan 등) 두 축으로 나뉜다.
  • 디지털 M에서 서드파티를 고를 때 반드시 확인할 것 세 가지: 6비트 코딩, 거리계 연동 정밀도, 주변부 마젠타.
  • 서드파티는 ‘정품을 못 사는 사람’의 차선이 아니다. 목적에 따라 오히려 합리적인 구성이 된다.
  • 이 시리즈는 보이그랜더 → 칼 자이스 ZM → 중국 렌즈 → 구매 가이드 순서로 이어진다.

라이카 M 렌즈를 처음 알아보는 분이 가장 먼저 마주치는 현실은 하나입니다. 가격입니다.

주미크론-M 50mm f/2. 라이카 렌즈 중 가장 ‘입문적’으로 불리는 표준 렌즈입니다. 신품 기준 400만 원대. 주미룩스 35mm f/1.4로 넘어가면 900만 원에 육박하고, 2026년 1월 출시된 녹티룩스 35mm f/1.2는 한화 1,400만 원 안팎입니다. 바디를 사기도 전에, 렌즈 한 개가 중형 세단 할부금 수준이 됩니다.

그 지점에서 서드파티 렌즈 검색이 시작됩니다. 보이그랜더, 칼 자이스 ZM, 7Artisans, TTArtisan. 이름은 들어봤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씁니다.

📌 서드파티가 ‘선택지’가 된 배경

라이카 M 마운트는 1954년 M3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플렌지백 27.8mm, 마운트 구경 44mm. 이 규격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어떤 제조사든 이 규격에 맞는 렌즈를 만들면 라이카 바디에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라이카 M10-R 실버 크롬 바디와 분리된 주미룩스 35mm f/1.4 렌즈, M 마운트 링 노출
M10-R 바디와 주미룩스 35mm f/1.4를 분리한 모습입니다. 1954년부터 이어진 M 마운트 규격 덕분에 서드파티 렌즈도 동일한 방식으로 결합됩니다. ⓒ TACO

필름 시절에도 서드파티는 존재했습니다. 코시나-보이그랜더가 1999년 M 마운트 렌즈를 재출시했고, 칼 자이스도 2004년 ZM 시리즈를 내놨습니다. 하지만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진 건 디지털 M이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2006년 M8을 시작으로, M9·M10 시리즈를 거치며 라이카 M의 사용층이 넓어졌습니다. 바디 가격이 오른 만큼 렌즈에서 숨 쉴 공간을 찾는 수요가 생겼고, 2018년 이후 중국 브랜드들이 M 마운트 시장에 본격 진입하면서 선택지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TACO 생각

M9-P 때부터 라이카를 써온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서드파티를 ‘타협’이라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정품을 쓰면서 서드파티를 곁눈질하는 게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막상 이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브랜드 충성이 아니라 목적에 맞는 선택이라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걸.

🗺️ 서드파티 M 마운트 렌즈 전체 지형도

현재 M 마운트 서드파티 렌즈를 만드는 브랜드는 크게 두 계열로 나뉩니다.

계열 브랜드 포지셔닝 가격대 (대표 렌즈 기준)
유럽계 보이그랜더 (코시나) 중급~준-프리미엄 30~150만 원
유럽계 칼 자이스 ZM 준-프리미엄 (2023 단종) 중고 60~150만 원
아시아계 7Artisans 보급형~중급 10~60만 원
아시아계 TTArtisan 보급형~중급 15~70만 원
아시아계 MS-Optics 소량 제작 고급 30~100만 원
아시아계 Thypoch 중급 신흥 30~60만 원

보이그랜더 가격대를 30~150만 원으로 잡은 건 이유가 있습니다. Color-Skopar 같은 소형 광각 라인은 30만 원대에서 시작하지만, APO-Lanthar 시리즈는 100~150만 원대까지 올라갑니다. 단일 브랜드 안에서도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칼 자이스 ZM은 2023년 공식 단종됐습니다. 신품 재고는 거의 소진된 상태이고, 지금은 중고 시장에서만 거래됩니다. 그 빈자리를 보이그랜더가 사실상 독점적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라이카 M6 블랙 바디에 보이그랜더 울트론 28mm 서드파티 렌즈를 장착한 모습
라이카 M6에 보이그랜더 울트론 28mm를 마운트한 모습입니다. 라이카 M 바디와 서드파티 렌즈의 조합은 이미 오래된 선택지입니다. ⓒ Unsplash

MS-Optics는 일본의 미야자키 코지 씨가 소량 제작하는 브랜드로, 대규모 생산이 아닌 아틀리에 방식에 가깝습니다. Thypoch은 2022~23년 전후 등장한 신흥 브랜드로, 라이카의 빈티지 광학 설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Simera 라인으로 빠르게 인지도를 쌓고 있습니다.

🔍 서드파티를 고를 때 실제로 봐야 할 것 3가지

M 마운트 규격이 맞는다고 해서 모든 서드파티 렌즈가 디지털 M에서 제대로 동작하는 건 아닙니다. 특히 세 가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첫째, 6비트 코딩 지원 여부. 라이카 M 디지털 바디는 렌즈 마운트 뒷면에 있는 6개 점 코드를 읽어 렌즈 정보를 인식합니다. 이 코딩이 없으면 바디가 렌즈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주변부 비네팅·색수차 자동 보정이 작동하지 않고, EXIF 메타데이터에도 렌즈 정보가 남지 않습니다. 보이그랜더 최신 라인업은 대부분 지원하지만, 구형이나 저가형 중국 렌즈는 미지원인 경우가 많습니다. 코딩이 없어도 직접 프로파일을 설정하거나 후보정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번거로움이 따릅니다.

라이카 M 마운트 렌즈 후면, 6비트 코딩 점이 보이는 마운트 링 클로즈업
렌즈 후면 마운트 링에 새겨진 6비트 코딩 점입니다. 이 점들을 바디가 읽어 렌즈 정보를 인식합니다. ⓒ TACO

둘째, 거리계 연동 정밀도. 라이카 M은 레인지파인더 방식입니다. 렌즈의 포커싱 캠이 바디 거리계와 정확히 맞물려야 핀이 제대로 맞습니다. 저렴한 렌즈일수록 이 캠 정밀도가 낮아 개방 조리개에서 초점 이탈이 잦고, 특히 f/1.4 이하 대구경 렌즈에서 두드러집니다. 중국 브랜드 초기 모델들이 이 문제로 악평을 받았고, 제조사가 보정 키트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셋째, 주변부 마젠타 캐스트. 라이카 M 디지털 센서는 픽셀 피치가 좁고 마이크로렌즈 입사각이 예민합니다. 광각 렌즈에서 주변부에 마젠타 색상 쏠림이 생기기 쉬운 구조입니다. 특히 M9·M240 같은 구형 풀프레임 바디에서 두드러지며, 후군 렌즈알이 센서 면 가까이 위치하는 Biogon 설계 렌즈에서 이 현상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칼 자이스 ZM의 Biogon 21mm, 25mm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6비트 코딩으로 어느 정도 소프트웨어 보정이 가능하지만, 완전한 해결은 어렵습니다.

6비트 코딩 없이도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쓸 수 있다’는 것과 ‘제대로 쓸 수 있다’는 건 다른 이야기입니다.

🤔 정품을 쓰는 사람이 서드파티를 어떻게 보는가

솔직하게 씁니다. M10-R에 주미룩스 35mm와 녹티룩스 50mm를 쓰는 입장에서, 서드파티를 따로 찾아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라이카 M10-R 실버 크롬에 주미룩스 35mm f/1.4 ASPH 렌즈를 장착한 정면 클로즈업
M10-R에 2년째 함께하고 있는 주미룩스 35mm f/1.4 ASPH입니다. 정품 렌즈를 쓰면서도 서드파티 시장을 들여다보게 된 건 결국 목적의 문제였습니다. ⓒ TACO

그런데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2026년 1월 녹티룩스 35mm f/1.2가 출시되기 전까지, 35mm 화각의 최대 밝기는 주미룩스의 f/1.4가 전부였습니다. 그 공백을 보이그랜더 Nokton 35mm f/1.2가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채워왔고, 실제로 많은 M 사용자들이 그 선택을 했습니다. 정품 라인업이 커버하지 못하는 자리를 서드파티가 오랫동안 메워온 역사가 있습니다.

21mm나 25mm 같은 화각을 실험적으로 써보고 싶다거나, 빈티지한 렌더링을 저렴하게 경험하고 싶다면 서드파티가 훨씬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서드파티는 열등한 대안이 아닙니다. 다른 목적을 위한 다른 도구입니다. 그 전제 위에서 이 시리즈를 씁니다.

TACO 생각

한 가지 미리 밝혀둘 게 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다루는 렌즈 중 일부는 직접 써보지 않은 것들입니다. 보이그랜더 일부 라인업은 주변 사용자들의 실사용 경험과 해외 리뷰를 교차 검토해서 정리했습니다. 직접 경험과 리서치 기반을 구분해서 쓰겠습니다. 없는 경험을 있는 것처럼 쓸 이유가 없으니까요.

📚 이 시리즈의 구성

이 글은 5편짜리 시리즈의 첫 번째 편입니다. 전체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편수 주제
1편 (이 글)왜 서드파티인가 — 전체 지형도와 선택 기준
2편보이그랜더 — 가장 현실적인 선택
3편칼 자이스 ZM — 단종 이후에도 살아있는 이유
4편중국 렌즈 — 7Artisans, TTArtisan 솔직 총평
5편구매 가이드 — 예산·목적별 조합

자주 묻는 것들

Q. 서드파티 렌즈를 라이카 M 디지털 바디에 바로 마운트해서 쓸 수 있나요?

마운트 자체는 됩니다. 다만 6비트 코딩이 없는 렌즈는 바디가 렌즈를 인식하지 못해 자동 보정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수동으로 렌즈 프로파일을 설정하거나 후보정 단계에서 처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깁니다.

Q. 칼 자이스 ZM이 단종됐는데 지금 구매해도 괜찮을까요?

렌즈 자체의 광학 품질은 단종과 무관합니다. 다만 향후 수리와 AS가 어려워질 수 있고, 일부 인기 모델은 중고 시세가 높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3편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Q. 중국 렌즈는 라이카 M에서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수준인가요?

브랜드와 모델에 따라 편차가 큽니다. 거리계 연동 정밀도와 코팅 품질이 제품마다 다르기 때문에 ‘중국 렌즈’로 일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4편에서 모델별로 구체적으로 정리합니다.

Q. 보이그랜더 렌즈는 라이카 정품과 화질 차이가 많이 나나요?

전체적으로 주변부 성능과 색 재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다만 가격 차이를 감안하면 보이그랜더의 광학 성능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습니다. 라인업별 구체적인 비교는 2편에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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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카 ASPH·FLE·APO 완전 정리 – 비구면 렌즈가 M 시스템을 바꾼 방식





    라이카 ASPH·FLE·APO 완전 정리 — 비구면 렌즈가 M 시스템을 바꾼 방식

    카메라 · 브랜드 스토리 · 라이카

    라이카 ASPH·FLE·APO 완전 정리
    비구면 렌즈가 M 시스템을 바꾼 방식

    1966년 최초 비구면 렌즈부터 2012년 APO까지 — 기술의 역사와 실사용 차이

    TACO
    2025. 12
    카메라 · 라이카
    ASPH · FLE · APO · 비구면렌즈

    이 글의 핵심

    • 라이카 ASPH는 1966년 녹티룩스 f/1.2에서 시작됐지만, 제조 난이도 때문에 1990년대까지 극소수 렌즈에만 적용됨
    • CNC 가공 기술이 상용화된 1990년대 이후 ASPH가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현재 고급 M 렌즈는 거의 전부 ASPH를 탑재함
    • FLE(Floating Elements)는 근거리 촬영 시 구면수차 잔여분을 억제하는 기술 — 개방 조리개 근접 촬영 화질이 핵심 차이점
    • APO는 색수차 제거 설계 — 픽셀 단위로 보면 차이가 크지만, 일상 사진에서 체감 여부는 출력 크기에 따라 다름
    • 비ASPH 렌즈가 ‘나쁜’ 렌즈가 아님 — 조리개를 f/2.8 이상으로 조여 쓴다면 주미크론 4세대도 충분히 날카로움
    • ASPH의 실질적 우위는 ‘개방 주변부’와 ‘야간 코마수차’ — 이 두 상황을 자주 마주치지 않는다면 비용 대비 효과를 먼저 따져봐야 함



    2024년 여름, 주미룩스 35mm f/1.4 ASPH II(FLE)를 들여왔습니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리스팅을 처음 봤을 때, 설렘보다 먼저 온 건 가격표였죠. 꽤 비쌌습니다. 그래도 결국 샀고, M10-R에 물려 개방 f/1.4로 첫 컷을 찍었을 때 모니터에 뜨던 이미지가 또렷해서 한참을 들여다봤어요.

    중심부만 선명한 게 아니었습니다. 주변부까지 바로 안정적이었죠. 그때 처음으로 ASPH가 단순한 마케팅 표기가 아니라는 걸 몸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생긴 의문이 하나 있었어요. 라이카는 1966년에 이미 비구면 렌즈를 만들 줄 알았는데, 왜 수십 년 동안 극소수 렌즈에만 ASPH가 붙었을까? 그리고 FLE는 ASPH와 어떻게 다를까? APO는 또 별개의 기술인가?

    이 글은 그 질문들에 대한 답입니다. 기술의 개념보다, ‘실제로 사진에 뭐가 달라지는가’에 초점을 맞춰 정리했습니다.



    🔬 비구면 렌즈, 한 줄로 설명하면

    일반 렌즈 표면은 구의 일부처럼 곡률이 일정합니다. 제작이 쉽지만 문제가 있어요. 빛이 렌즈 가장자리를 지날 때 중심부와 굴절각이 달라집니다. 이걸 구면수차(spherical aberration)라고 부르는데, 조리개가 밝을수록 심해집니다. f/1.4나 f/1.0 같은 렌즈에서 개방 화질이 나빠지는 주된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비구면(aspherical) 렌즈는 표면 곡률이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가면서 미세하게 변합니다. 이렇게 하면 렌즈 전체를 통과한 빛이 한 점에 수렴합니다. 개방에서도 주변부까지 선명하게 나오는 이유죠.

    이론은 간단합니다. 문제는 만드는 게 극도로 어렵다는 거였습니다.

    📅 1966년에 시작됐지만, 왜 1990년대까지 기다려야 했나

    라이카가 비구면 기술을 처음 쓴 건 1966년 녹티룩스 f/1.2입니다. 당시 f/1.2라는 밝기를 실용적인 화질로 구현하려면 비구면 설계가 불가피했어요. 그런데 이 렌즈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비구면 면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연마해야 했고, 불량률이 높았으며, 비용도 천문학적이었죠.

    1975년에 등장한 녹티룩스 f/1.0이 구면 설계로 돌아간 건 그래서입니다. 기술이 퇴보한 게 아니라, 그 시점에서 비구면 대량생산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던 겁니다.

    전환점은 1990년대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 정밀 가공 기술의 발전이었습니다. 컴퓨터가 0.001mm 단위로 렌즈 표면을 자동으로 깎아내기 시작하면서, 수작업에서는 불가능했던 정밀도가 반복 재현 가능해졌습니다. 동시에 컴퓨터 광학 시뮬레이션이 발전하면서 설계 단계의 시행착오도 줄었어요.

    1990년 주미룩스 50mm f/1.4 ASPH(E43)가 ‘ASPH’라는 표기를 제품명에 처음 공식 사용한 렌즈였고, 1994년 주미룩스 35mm f/1.4 ASPH 1세대, 1997년 주미크론 35mm f/2.0 ASPH 5세대가 연달아 나오면서 비구면 기술은 M 렌즈의 표준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TACO 생각

    M9-P 시절에 주미크론 35mm 4세대(1979년, 비ASPH)를 썼습니다. 개방 f/2.0에서 주변부가 약간 무른 느낌은 있었지만, f/2.8으로만 조이면 충분히 날카로웠어요. 솔직히 그 렌즈가 ‘나빴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ASPH 전환 후 차이를 알게 된 건, 두 렌즈를 실제로 써본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 ASPH 적용 주요 M 렌즈 연표

    ASPH 기술이 M 렌즈에 어떻게 확산됐는지 순서대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연도 렌즈명 의미
    1966 Noctilux-M 50mm f/1.2 ASPH 비구면 기술 최초 적용 — 수작업 연마, 소량 생산
    1975 Noctilux-M 50mm f/1.0 구면 설계 복귀 — 제조 현실 반영
    1990 Summilux-M 50mm f/1.4 ASPH (E43) ‘ASPH’ 명칭 공식 첫 사용
    1994 Summilux-M 35mm f/1.4 ASPH (1세대) 35mm 화각 비구면 시대 개막
    1997 Summicron-M 35mm f/2.0 ASPH (5세대) f/2.0급 렌즈에도 ASPH 확산
    2004 Summilux-M 50mm f/1.4 ASPH 현행 50mm 주미룩스 설계 기준점
    2008 Noctilux-M 50mm f/0.95 ASPH 현행 녹티룩스, 극한 밝기에 비구면 적용
    2012 APO-Summicron-M 50mm f/2.0 ASPH ASPH + APO 결합, M 렌즈 화질 정점
    2022 Summilux-M 35mm f/1.4 ASPH II (FLE) FLE 추가, 최단 초점거리 0.7m→0.4m



    🔧 FLE란 무엇이고, ASPH와 어떻게 다른가

    FLE는 Floating Elements의 약자입니다. 렌즈 일부 군이 초점 거리에 따라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구조예요.

    일반 렌즈는 초점을 맞출 때 렌즈 전체가 앞뒤로 이동합니다. 이 방식은 무한대에서는 잘 맞지만, 가까운 거리로 갈수록 구면수차의 잔여분이 다시 올라오면서 화질이 흔들립니다. 특히 조리개를 변경할 때 초점 위치가 미세하게 이동하는 ‘초점 이동(Focus Shift)’ 현상도 여기서 생깁니다.

    FLE는 근거리 촬영 시 일부 렌즈 군이 따로 이동하면서 수차를 실시간으로 보정합니다. 모든 초점 거리에서 개방 조리개 성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거죠.

    제가 쓰는 주미룩스 35mm f/1.4 ASPH II는 FLE 덕분에 최단 초점 거리가 0.7m에서 0.4m로 줄었습니다. 카페에서 테이블 위 커피잔을 0.4m 앞에서 M10-R 라이브 뷰로 찍으면, f/1.4 개방에서도 전 세대 렌즈에서는 나오지 않던 선명도가 나옵니다. 근접 촬영을 자주 한다면 이 차이는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TACO 생각

    FLE가 추가됐다는 건 렌즈 내부 구조가 복잡해졌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주미룩스 II는 전 세대보다 무겁고, 조리개 링의 조작감도 약간 달라졌어요. 화질 향상은 분명하지만, 무게와 크기가 늘어난 트레이드오프는 있습니다. 거리 스냅 위주라면 경량 렌즈가 오히려 더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APO는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한다

    ASPH가 구면수차를 잡는 기술이라면, APO(Apochromatic)는 색수차를 잡는 기술입니다. 두 가지는 해결하는 광학적 문제가 다릅니다.

    일반 렌즈에서 빨강, 초록, 파랑 빛은 굴절률이 달라서 조금씩 다른 위치에 초점이 맺힙니다. 이게 색수차(chromatic aberration)인데, 고대비 경계면에서 보라색이나 초록색 번짐으로 나타납니다. APO 설계는 특수 저분산 유리를 써서 세 가지 색의 초점 위치를 거의 같은 지점으로 모읍니다.

    2012년 출시된 APO-Summicron 50mm f/2.0 ASPH는 ASPH와 APO를 함께 적용한 렌즈입니다. 개방 f/2.0에서 색 번짐 없이 극도로 높은 해상력을 보여주죠. M 렌즈 중 최고 화질이라는 평가를 자주 받는 이유입니다.

    다만, 일상적인 사진에서 APO와 비APO의 차이를 눈으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100% 픽셀 확대 후 고대비 경계선을 보면 차이가 보이지만, 웹 해상도나 일반 출력 크기에서는 체감이 어렵습니다. APO는 현재 중고가 900만 원을 훌쩍 넘습니다. 이 차이에 그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가, 그게 현실적인 판단 기준입니다.


    📊 ASPH vs 비ASPH — 실제로 뭐가 다른가

    기술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실제 사진에서 차이가 느껴지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촬영 상황 비ASPH (주미크론 35mm 4세대) ASPH (주미룩스 35mm f/1.4 ASPH II)
    개방 중심부 날카로움 매우 날카로움
    개방 주변부 약간 무름 — f/2.8에서 해소됨 개방에서도 안정적
    야간 점광원 코마수차로 빛이 번짐 거의 없음
    근접 촬영(0.4m) 불가 (최단 0.7m) FLE 적용, 선명도 유지
    색수차 (APO 아님) 고대비 부분에서 번짐 있음 억제됨 — APO보다는 덜함
    무게 약 200g 약 320g
    중고가 (2025년 기준) 250만 원대 500만 원대 초반~

    이 표에서 중요한 건 비ASPH가 나쁜 렌즈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f/2.8 이상으로 조여 쓰는 사람’에게는 주미크론 4세대로도 충분합니다. ASPH의 우위가 가장 크게 발휘되는 건 ‘개방 조리개를 자주 쓰는 상황’과 ‘야간 점광원이 많은 환경’ 두 가지입니다.

    비싼 렌즈보다 중요한 건 자주 쓰는 렌즈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찍는가를 먼저 따져야 합니다.

    💡 ASPH의 트레이드오프 — 없는 단점이 아닙니다

    비구면 렌즈가 무조건 우수한 건 아닙니다. 몇 가지 현실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무게입니다. 비구면 설계는 렌즈 군이 늘어나고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무게가 증가합니다. 주미크론 35mm 4세대와 주미룩스 35mm ASPH II의 무게 차이는 120g인데, 종일 들고 다니는 스트리트 사진가에게 이건 무시하기 어려운 차이입니다.

    둘째로 렌더링 성향입니다. 수차가 완벽히 보정된 ASPH 렌즈는 날카롭고 현대적인 느낌을 줍니다. 반면 오래된 비ASPH 렌즈의 약간의 수차가 만들어내는 부드럽고 ‘덜 완벽한’ 렌더링을 더 좋아하는 촬영자들도 있습니다. 주관의 영역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차이입니다.

    셋째로 가격입니다. 비구면 면 하나를 정밀 가공하는 비용은 구면 렌즈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 비용이 최종 가격에 반영됩니다.

    🤔 결국 누가 ASPH를 사야 하는가

    개방 f/1.4~f/2.0을 일상적으로 씁니다. 밤에 거리를 찍거나 조명이 약한 실내에서 자주 찍습니다. 최단 초점거리가 짧을수록 활용도가 높습니다. 이 세 가지 중 두 개 이상 해당한다면 ASPH는 확실히 정당한 선택입니다.

    반대로, 주로 낮에 찍고 f/2.8 이상을 자주 씁니다. 무게가 신경 쓰입니다. 예산이 한정돼 있습니다. 이 경우라면 비ASPH 중고가 오히려 더 나은 출발점일 수 있습니다. 주미크론 35mm 4세대 중고는 여전히 200만 원대에서 구할 수 있고, 조여서 쓰면 화질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ASPH가 ‘더 좋은 렌즈’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모든 사람에게 더 좋은 선택’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TACO 생각

    주미룩스 35mm ASPH II를 들여오면서 후회는 없습니다. 야간 거리 촬영에서 코마수차가 사라진 것, 카페에서 0.4m 근접으로 개방 촬영이 가능해진 것 — 이 두 가지가 저한테는 충분한 이유였습니다. 다만 제가 라이카 M을 7년 이상 쓴 사람이고, 주미크론 4세대가 어떤 렌즈인지 이미 알았기 때문에 비교가 가능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M 시스템에 들어온다면, 비싼 ASPH보다 먼저 M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게 순서라고 봅니다.

    자주 묻는 것들

    Q. ASPH 렌즈라고 다 성능이 같은 건가요?

    아닙니다. ASPH는 비구면 렌즈를 사용했다는 표기일 뿐입니다. 비구면 면의 매수, 배치, 나머지 광학 설계에 따라 성능 차이가 큽니다. 1990년 주미룩스 50mm ASPH와 2022년 주미룩스 35mm ASPH II는 같은 표기를 쓰지만 전혀 다른 설계입니다.

    Q. FLE가 없는 구형 주미룩스 35mm ASPH(1세대)와 현행 II 사이 차이는 얼마나 큰가요?

    중심부 화질은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최단 초점거리(0.7m → 0.4m)와 근거리 개방 화질입니다. 가격 차이가 상당한 만큼, 근접 촬영을 자주 하지 않는다면 구형도 충분합니다.

    Q. APO-Summicron 50mm는 일반 사진에서 차이가 느껴지나요?

    고대비 경계선, 흰 배경에 어두운 피사체처럼 색수차가 도드라지는 상황에서는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SNS 해상도나 A4 이내 출력에서는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900만 원 이상의 중고가를 정당화하려면 대형 출력이나 픽셀 단위 편집 작업이 전제돼야 합니다.

    Q. 비ASPH 렌즈를 디지털 M 바디에 쓰면 문제가 있나요?

    광학적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고해상도 센서(M10-R: 4030만 화소, M11: 6000만 화소)는 렌즈의 수차를 더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필름 시대에는 눈에 띄지 않던 주변부 화질 저하가 디지털에서 더 도드라질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고해상도 바디 유저에게는 ASPH 렌즈의 이점이 실질적으로 더 크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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